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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제하는 한해가 되자/1997년을 살아갈 우리의 자세(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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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제하는 한해가 되자/1997년을 살아갈 우리의 자세(사설)

입력
1997.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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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로운 한해는 어떤 한해여야 하는가. 숨차게 달려왔던 그대로 더 열심히 달리기만 하면 되는가. 세기가 바뀌고 세계가 바뀌어 간다는데 우리는 과연 어떤 모양이어야 하는가. 이 물음들에 답하기 전에 우리는 우리가 맞을 1997년의 모양을 그려볼 필요가 있다.새해는 두말할 것 없이 대선의 해다. 정부 수립 후 꼭 15번째이지만 이번의 함축은 다르다. 「문민시대」가 어떤 모양으로 착근되느냐는 여기 달렸다.

모두가 원했던 것이지만 우리는 지난 4년간 문민화에 너무나 많은 값을 치렀다. 연속된 개혁과 척결과 청산이 휩쓸고 간 지금 우리에게 안겨진 것은 탈진이요 산적한 난제들 뿐이다. 불신과 반목은 극대화되고 국론은 갈릴 대로 갈렸다. 여기에 이 시대의 이념이라는 경제는 침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경제걱정이 온 나라에서 합창하듯 터져나오고 있다.

대선은 이 모든 것에 반전을 만들어내야 한다. 적어도 그런 기대가 걸려 있다. 여기서 대선과 새해의 명운과의 상관관계는 명확해진다.

지금 우리의 난마처럼 얽힌 문제들이 사람 하나로 풀려질 수 있는 것들은 아니지만 우리가 어떤 리더십을 갖느냐에 따라 그 향방은 완연히 달라질 수 있다. 그러니 잘 뽑아야 한다. 수많은 주문들에 공통된 것은 「더 이상 지사도 투사도 아닌 지적능력있는 국가관리자」다. 역사에 대한 통찰도 있어야겠다. 정확히 이번 대통령은 우리의 21세기를 여는 대통령이다.

올 한해는 내내 이 대선을 놓고 온 국토가 또 한차례 열병을 앓을 것이다. 그만큼 반목과 갈등은 깊어질 수 있다. 그러나 후유증을 얼마나 작게 하느냐는 우리의 지혜다. 조금씩 자기 주장을 덜하고 남의 몫도 인정해 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어려운 때일수록 필요한 것은 서로간의 자제다. 그것이 이 한해, 이 불확실성의 시대를 사는 덕목이 돼야 한다.

자제란 자기절제다. 할 수 있어도 다하지 않는 것, 덜하는 것이다. 우리가 좀 잘 살게 됐다고 남들이 말한 후 우리에게 두드러져 나타난 현상이 자제력의 상실이다. 오늘날 우리의 모든 문제들이 여기서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만과 독선, 탐욕스런 자기중심, 배타, 분수를 모르는 졸부와도 같은 거드럭거림, 큰소리―「성취」를 향해 앞뒤를 가리지 않고 숨차게 달려오는 사이 우리의 마음과 행동에는 이런 고질의 녹이 슬어버렸다. 더 무서운 것은 이것이 마치 이 시대의 우리 국민성처럼 사회화, 국가화한 데 있다.

과소비, 호화사치, 놀자주의, 이에 대한 초계층적이고 폭발적인 모방현상. 여기서 비롯되는 부패, 부실·갈등과 반목의 가중·편가르기의 심화―어느 건강한 사회인들 이런 격랑과도 같은 문제들에 온전하게 남을 수 있겠는가. 한강의 기적이라던 우리 경제가 1만달러 고비에서 무릎을 꿇는 참패의 모습을 보이는 것도 모두 여기서 비롯된 것, 「자제」를 잊어버리고 살아 온 결과다.

자제란 원래 자기교습이고 자기훈련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문제될 때 더 이상 개인의 것이 아니다. 사회의 것이요, 국가를 이끄는 리더십의 것이다. 그래서 리더십이 국민에게 무엇을 보여주었는가가 대단히 중요하다. 조금 이룬 성취를 한껏 부풀리고 자화자찬에만 급급했다면,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끝없이 들뜨게 했다면 오늘의 화근은 그들 스스로 만들어 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집안 어른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가풍을 형성하듯 한사회의 분위기는 그 사회를 이끌어가는 층, 더 정확히 말해 그 층을 이끌어가는 지도자에게 달렸다. 우리의 지난날들은 이 점에서 실패작이다. 최고 최상만이 선이고, 1등이 아니면 경멸되고, 힘이 없다 싶으면 모두가 외면하는 지극히 한국적 획일화도 이런 오만과 허세에서 비롯됐다.

차선이 존재할 틈을 안 주고 다양한 선택의 입지는 갈수록 좁혀지고 있다. 모든 것이 하나뿐이고 대단히 2분법적이다. 그러니 여유가 없고 갈수록 각박하다. 여기서 우리를 해방시킬 수 있어야 한다. 오랫동안 우리의 의식에, 우리의 행동에 알게 모르게 끼었던 녹을 벗겨내고 거품을 걷어내야 한다. 우리를 있는 그대로, 알짜로 만들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닥치고 있는 내외의 환경들은 결코 만만한 것들이 아니다. 대선의 와중에서도 경제회생은 이 해 최우선의 과제다. 시간이란 인내를 갖고 그야말로 모든 당사자―정치와 노와 사가 적절한 자제를 해야 가능하다. 노동법 파란에서 보듯 개혁이란 선언보다 마무리가 몇 백배 힘든 일이다. 북한은 여전히 예측불허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으로 우리는 알몸으로 강대국과 경쟁하지 않으면 안되게 됐다.

이 난제들은 문제마다 그 나름의 해법이 있긴 하지만 이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속성도 있다. 사회적 총동원―통합의 힘이 없이 돌파가 어렵다는 점이다. 모래알처럼 흩어진 마음들을 하나로 묶는 대봉합 없이 공략은 불가능하다. 봉합도 통합도 리더십에서 비롯된다. 리더십이 겸허해져야 한다. 군림하는 리더십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이끄는 리더십이 돼야 한다. 검소하고 내핍하고 자제하는 모습도 보여야 하고 공부하는 모습도, 고민하는 모습도 보여야 한다. 「쇼」는 이제 끝내야 한다. 문민은 허세를 할 필요가 없다.

소시민의 평안한 일상이 보장되지 않는 선진국이란 없다. 그것은 OECD가 갖다 주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달려온 그대로 더 열심히 뛴다고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를 선진국에 맞게 개조해야 가능하다. 목소리를 낮추고, 덜 멋대로 하고 상대의 존재, 다른 의견, 다른 방법의 가능성을 염두에 둘 줄 알아야 한다. 자제로써 얻는 「여분」의 의미를 알 수 있어야 한다. 여분에서 길은 생겨난다.

지난해가 어떠했든 새해는 새해의 꿈도 있어야 하고 다짐도 있어야 한다. 올 한해의 순항을 위해 우리 서로 자제하는 마음을 갖자. 이것은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가 솔선해야 하고 이 나라를 지탱하는 한사람 한사람이 사심없이 따라 줘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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