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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지키는 사람들/구조대원·도로보수원·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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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지키는 사람들/구조대원·도로보수원·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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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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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위해 언제나 대기중/집안행사 참석못해 어려워도 24시간 한시도 비울 수 없다서울 곳곳에는 시민의 공익과 안전을 위해 밤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119구조대원, 경찰, 도로보수원, 사설경비업체 직원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저마다 맡은 일을 해내느라 밤을 누빈다.

서울 시내 18개 소방서에는 400명 가까운 119 구조대원이 근무한다. 아침 9시에 출근해 다음날 아침 9시까지 꼬박 24시간을 근무한다. 서울 종로소방서에만 21명의 구조대원이 있다. 90%가 특전사 출신이다.

취재팀이 찾아간 날 밤에도 구조대원들은 벌써 2번이나 출동했다. 그러나 모두 허위신고. 맥이 빠지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느라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연말이면 사고가 더 잦다. 술취한 사람의 추락사고, 음주운전 사고 등 술때문에 빚어지는 일이 특히 많다. 12월에는 하루 평균 5번 정도 출동했다.

경력 8년째인 베테랑 허창만(34) 반장. 88년 119구조대가 만들어질 때부터 근무한 창설요원이다. 『제사나 명절 등 집안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입니다. 지난달에는 사촌동생 결혼식에도 못갔어요. 사정을 알기 때문에 다들 이해는 하지만 미안해서 혼났습니다. 1월에는 동생이 결혼하는데 혹시 비상이라도 걸릴까 봐 벌써부터 조마조마합니다』

총각인 인홍진(31) 대원. 『맞선 날짜를 잡아 놓고 못나간 일이 몇번 있습니다. 이러다가는 장가도 못가는 것 아닌지 모르겠어요』

지난해부터 소방서마다 2명의 간호사가 배치됐다. 2교대 24시간 근무제는 여자라고 예외일 수 없다. 중간 규모의 병원에서 근무하다 자리를 옮긴 조미화(32·여)씨는 채용공고를 보고 곧바로 지원했다. 『현장에서 서민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사설경비업체 직원도 밤의 안전을 지키는 데 한몫 한다. 입사 2년째인 「에스원」의 정재성(26)씨는 하오 6시 관제모니터가 설치된 승용차를 타고 종묘공원 인근 귀금속 도매상가 밀집지역으로 출근한다. 그가 맡은 구역은 종로2, 3가 일대 800여 업소. 그는 1시간 간격으로 정기순찰을 하며 이상유무를 점검한다. 순찰도중 경보가 울리고 관제모니터에 경보가 울린 곳이 나타나면 비상 사이렌을 켜고 즉각 출동한다. 그래서 가스총과 핸드폰 방망이 등이 필수품이다. 태권도 3단인 그의 맨 주먹도 훌륭한 무기다. 그는 지난해 이맘때 새벽 순찰중 이상신호가 울린 곳으로 출동해 혼자서 도둑을 잡은 경험도 있다.

도로공사도 주로 밤에 이뤄진다. 낮에는 교통체증을 유발, 시민들의 항의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새벽 1시 서울 사평로 반포 복개천. 매서운 겨울 밤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신축이음새 설치공사가 한창이다. 동부건설사업소가 발주한 공사로 세진건설 직원 20여명이 일주일째 작업중이었다. 이들은 보통 하오 6시에 출근, 기계 등을 점검한 뒤 밤 10시부터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간다. 『긴밤을 꼬박 세워야 하는데다 날씨가 추워 겨울공사는 고역입니다. 야간작업시 음주운전자가 바리케이드를 들이 받고 밀고 들어 오는 등 아찔한 일도 많습니다』 작업반장 김은영씨의 설명이다.

경찰이나 간호사들도 겨울밤은 바쁜 시간이다. 날씨가 추운데다 연말연시 분위기로 긴장이 풀어져 사고가 잦아진다. 음주운전자 단속이라도 있는 날이면 경찰서 형사계는 보호실에 들어가 있는 취객들의 고함과 조서를 작성하는 타자기 소리로 밤새 시끄럽다.<이진동·이상연 기자>

◎서울지방철도청 보선계장 김창수씨/“열차 끊긴 새벽 철길이 내 일터”/모두가 잠든 한밤중 선로의 자갈 치우고 다지고/“우리 없으면 열차 못달려요”/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37년 무사고 지킬 수 있기를

영하 10도의 12월 중순 겨울밤, 서울 용산∼청량리 경원선 구간의 왕십리역 인근 철로. 새벽 2시가 넘었는데도 줄줄이 늘어선 작업열차의 웅웅거리는 기계음속에 10여명이 철길에 깔린 자갈을 치우느라 분주했다.

작업 책임자는 서울지방철도청 경기보선사무소 김창수(57) 보선계장. 철도공무원 생활 37년째로 내년 6월이면 정년퇴직하는 그는 3년전 이 일을 처음 맡았다. 보선계는 선로에 쌓인 자갈을 레일 바깥쪽으로 퍼내 옮기고 새 자갈을 고르게 까는 선로 보강작업을 담당한다.

열차운행이 끊긴 새벽 1시께 일을 시작해 첫차가 다니기 직전인 새벽 4시까지는 마쳐야 하기 때문에 계원들은 늘 밤낮을 바꿔 생활한다. 철도청 공무원들도 보선계를 1순위의 고된 부서로 꼽는다. 그중에서도 김계장이 속한 제2종 작업단은 자갈 치우기와 다지기, 선로 주변정리 등 모든 선로보강작업을 한꺼번에 해내야 한다. 김계장은 철도청 근무의 말미를 가장 힘든 부서에서 보내게 된 셈이다.

경기보선사무소가 맡고 있는 구간은 서울지방철도청이 관리하는 1,100㎞ 모두. 이중에서도 커브가 심하거나 파손이 잦은 취약구간이 보선계 사람들의 주무대다. 올해만도 35㎞구간을 정리했다.

그래도 김계장은 손톱만큼의 불만도 없다. 『17명의 계원들이 이틀에 한번씩 24시간을 함께 일합니다. 선로보강작업이 끝나면 잠깐 눈을 붙이고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는 장비를 정비합니다. 계원 모두가 「우리가 없으면 열차가 달릴 수 없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합니다. 정비도 게을리 할 수 없습니다. 우리 계원들이 다루는 장비 가격이 50억원이 넘는데 모두 국민 세금으로 산 것 아닙니까』

17명의 계원 가운데 30, 40대가 3분의 2정도이고 나머지는 김계장 또래의 50대다. 자연스럽게 집안의 경조사, 자녀 진로문제 등에 대해 자주 대화를 나눈다. 현장에서 김계장은 지시만 내리는 「상급자」가 아니라 함께 작업에 참여하는 「동료」 보선계원이다. 『같이 생활하는 시간이 많다보니 서로 깊은 정이 들었어요. 요즘은 손짓 한번으로도 모든 작업이 척척 맞아돌아 갑니다』

철도전문대 전신인 교통고 토목과를 졸업한 것이 59년. 수많은 현장부서를 거친 까닭에 야간작업에는 이골이 났다. 부천·안산 분소장으로 지내던 5년동안에는 장비없이 인력만으로 선로교환작업을 해 내기도 했다. 하지만 보선계 일은 그때보다 몇배나 힘들다.

『공휴일·일요일은 물론 토요일도 우리와는 상관없는 날입니다. 이틀에 한 번 쉬는 비번만 있을 뿐이죠. 나는 4자녀가 모두 자라 괜찮지만 젊은 직원들은 어려움이 많아요. 또 철로 한쪽을 막아 놓고 일을 하지만 반대쪽으로는 화물열차가 수시로 지나가기 때문에 안전사고 위험도 높습니다. 늘 신경을 쓰지만 불안하지요. 장비를 다루다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고요』

그의 유일한 바람은 철도공무원 생활 37년간의 무사고 기록을 끝까지 깨지 않고 마치는 것이다. 『뇌물이요? 평생 그런 건 구경도 못했어요. 바라지도 않고요. 무사고로 정년퇴직하면 훈장을 받습니다. 하급공무원이니 옥조훈장을 받겠지요. 그게 어딥니까. 아이들한테 자랑스럽고, 제일 큰 영광이지요』

보선작업의 중요성에 대한 일반의 몰이해로 인한 고충도 있다. 『장비 소음때문에 선로 주변 주민의 원성을 많이 삽니다. 낮에 미리 작업을 예고해도 잠자는데 시끄럽다고 작업장에 돌을 던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선로 사이의 자갈을 제때 치우지 않으면 열차 탈선 등 대형사고가 빚어질 수 있습니다. 내년에는 소음을 줄이는 장비가 들어온다고 하니 제 후임은 욕을 덜 먹으며 일할 수 있겠죠』<이상연 기자>

◎야식배달전문점 ‘헐랭이’에 비친 서울의 밤풍경/밤일하는 사람들이 주고객/새벽 1∼3시가 가장 바빠

야식배달 전문점 「헐랭이」서울 1호점 주인 김현원(37)씨 눈에 비친 밤풍경은 색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땀흘리며 맡은 일에 매달리는 한편에서는 밤내음과 묘한 열기에 취해 흔들리는 사람들도 있다.

김씨가 부인 이춘희(37)씨와 함께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 가게를 연 것은 2년전. 아내가 『혼자 해보겠다』고 시작한 장사지만 이내 손이 모자라 그도 팔을 걷어부칠 수 밖에 없었다. 낮에 인쇄소에서 일하면서도 거의 매일밤 배달에 나선다. 조리사와 배달원을 한명씩 고용하긴 했지만 주문이 밀려 들면 4명으로도 힘에 부친다. 가장 바쁜 시간은 새벽 1∼3시. 배달용 오토바이와 소형 승용차 꽁무니에 불이 난다.

김씨는 야식집의 고정 고객을 두 부류로 나눈다. 병원 경비용역업체 소방서 등에서 일을 하느라 밤을 밝히는 사람들과 단란주점 당구장 노래방 등에서 밤을 즐기는 사람들. 그에게는 모두가 소중한 손님이다.

『술에 취해 전화하는 손님이 많습니다. 장소를 잘못 알려 줘서 골탕을 먹이는 사람도 있고 먹어 보지도 않고 맛이 없다고 시비를 걸기도 해요. 룸살롱이나 단란주점에서는 종업원 아가씨들이 많이 찾습니다. 영업이 끝나고 자기들끼리 야식을 안주 삼아 한잔 더하는 거지요. 그래야 손님들한테 받은 스트레스도 풀릴 것 아닙니까』.

밤일하는 사람들은 가장 확실한 손님이다. 『병원응급실 간호사들이 야식을 가장 좋아해요. 남자보다는 여자들이 야식을 좋아하는 것 같고요. 그리고 요즘은 어떻게 알았는지 멀리 떨어진 언론사, 소방서 등에서도 전화가 와요. 든든하게 먹어 둬야 일도 열심히 하는 거지요』

예전에는 안마시술소나 여관 등 드나들기 민망한 곳에서도 가끔 전화가 왔으나 최근에는 주문이 거의 끊겼다. 『헐랭이 야식 메뉴는 닭볶음 족발 빈대떡 등이라 식사와 술안주를 겸할 수 있어요. 여럿이 모여 고스톱이나 치면 모를까, 은밀하게 시켜 먹기에는 부담스러운 모양입니다』

아파트촌의 상가 안내지를 통해 광고도 한 덕분에 요즘엔 일반가정의 주문도 부쩍 늘었다. 『밤에 손님이 밀어 닥치거나 가족모임 등이 길어지면 야식을 주문하는 주부가 많아요. 술에 취한 주부가 아파트 호수를 잘못 알려 줘서 다른 집을 찾아간 적이 있어요. 그집 가족들이 강도로 잘못 알고 경찰에 신고하려고 해 혼쭐이 났습니다. 밤에 험한 일이 자꾸 일어나니까 모두들 서로를 믿지 못하는 것 같아요』<이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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