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위한 보람찬 발길 “새해도 멈출 수 없죠”을씨년스럽기만 했던 96년이 저물어간다. 불황에 파업에 연말까지 뒤숭숭하지만 자신의 할 일을 다하며 보람을 결산하는 사람들도 많다. 두 쥐띠 30대의 96년을 소개한다.
◎피해 재중동포 돕는 이호택씨/사기피해 고소장 등 해결사 역할
『재중동포의 고단하고 궁핍한 삶에서 한국인과 한국사회의 이기심을 보았습니다. 그들을 따뜻하게 해 줄 관심과 지원이 더욱 필요합니다』
재중동포 사기피해자의 「구세주」 이호택(36)씨. 시민종합법률사무소 외국인상담실장, 외국인노동자피난처 실무간사인 이씨는 재중동포문제 해결을 위해 병자년 한 해를 정신없이 뛰었다.
9∼11월 중국 지린(길림)성 옌볜(연변)시 등 재중동포 밀집지역 5곳을 방문, 1만4백여건의 사기피해 사례를 접수해 이중 9천3백39건에 대한 고소장을 검찰에 제출했다. 이씨의 노력 덕분에 재중동포 사기피해문제는 사회적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79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뒤 85년 대학원까지 마친 이씨는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92년 11월 『외국인노동자문제를 등한시하는 풍조가 안타까워』 이 일에 나섰다. 어느 누구의 관심도, 아무런 보상도 없는 일이었다. 지난해 8월 그가 혈혈단신 중국에 가겠다고 했을 때 동료들은 만류했다. 그러나 난생 처음 접한 재중동포 사기피해사례 53건은 이씨의 진로를 바꿔버렸다.
미혼인 이씨의 목표는 변호사다. 그는 변호사를 「편리한 자격증」이라고 말한다. 재중동포를 법테두리 안에서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정축년 새해는 사법고시 준비에, 재중동포돕기에 더욱 바쁜 한해가 될 것같다.<이동훈 기자>이동훈>
◎장애인 야학교사 박경석씨/근로장애인 교육·권익신장 앞장
서울 광진구 구의동 정립회관내 「노들야학」의 수학교사 박경석(36)씨는 장애인. 박씨가 가르치는 학생 26명도 모두 장애인이다.
올해 대입검정고시에서 이 야학의 학생들은 4명 전원이 합격했다. 전국장애인 한가족협회가 93년 근로장애인들을 위해 야학을 세운 이래 첫 경사였다.
지난 21일 열린 「노들인의 밤」 송년행사에는 이 곳을 거쳐간 학생과 퇴임교사 2백여명이 찾아와 박씨 등 현직교사 학생들을 따뜻하게 격려했다.
박씨는 해병대 제대후 복학(영남대)을 준비하던 83년 8월 전국대학생 행글라이딩대회에 참가했다 척추를 다치는 사고를 당해 「휠체어인생」을 시작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취업을 하지 못한 박씨는 91년 숭실대 사회사업학과에 입학, 장애인 권익신장운동에 뛰어들었다.
지난 9월 장애인 편의시설도 부족하고, 장애인을 위한 정책이나 사회제도가 미비한 우리나라가 「루스벨트 국제장애인상」수상국으로 결정됐다는 소식은 그를 실소케 했다. 박씨는 미대사관 앞에서 항의하다 동료장애인과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그는 아직 미혼이다. 대학원 학비도 형제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그러나 『술 한 잔 사달라』는 나이 지긋한 야학생과 밤 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이면서 흉금없는 이야기를 나눌 때 그는 『이 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구나』하고 생각하며 다시 힘을 얻는다.<김관명 기자>김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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