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십자가 지고 산지 어느덧 50년”/“안쓰는 고통보다 차라리 쓰는게…”/신앙생활 되돌아보며 23년만에 ‘실낙원의 아침’ 펴내원로시인 홍윤숙(71·예술원회원)씨가 정축년 새해를 맞는 감회는 남다르다. 47년 「문예신보」에 「가을」이라는 시로 문단에 데뷔한지 5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홍씨는 최근 문학인생 반세기를 결산하는 의미에서 11번째 시집 「실낙원의 아침」(열린간)을 펴내 끊임없는 창작열을 과시했다. 소녀인가 싶었더니 어느새 칠순을 넘은 그의 얼굴에서는 원숙함이 배어나온다. 23년만에 상재한 시집 「실낙원의 아침」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가 30여년의 신앙생활을 되돌아 보며 쓴 것으로, 죄의 그늘속에서 「골고타」의 산길에 담긴 뜻을 너무도 결곡한 어법으로 그려내고 있다.
마치 기도문이나 참회록을 보는 듯하다. 시집에 실린 시는 모두 75편. 인간의 삶 자체가 제 몫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거라는 생각에서 쓴 「십자가」연작 60편과 92년 사별한 부군을 추모하며 쓴 「92년 가을비망기」15편이다. 「십자가」연작은 나날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갈등과 고뇌를 신앙적 시각에서 형상화한 신앙시.
「내가 지상을 마지막 떠나는 날은/ 꽃피는 춘삼월 어느 아침이거나/ 만산홍엽으로 불타오르는/ 노을 속 해지는 가을저녁 무렵이면 좋겠다/ 머리맡에 사랑하는 가족들 둘러앉고/ 부엌에선 한 생애 손때 묻은 놋주전자/달달달 물 끊는 소리 들리고/ 그레고리안 성가 한 소절 잔잔히 흐르는/…」(십자가 29 「내가 떠나는 날은」). 머리말에서 『마침표를 위해 준비를 서둘러 해야 한다』고 쓴 노시인의 마음이 보인다.
그는 요즈음 부쩍 바빠졌다. 가톨릭 교계지인 평화신문이 주관하는 「평화문학상」 시부문 심사를 맡았고, 22일에는 대구 가톨릭신학대 강당에서 「삶과 시와 믿음」을 주제로 강연도 했다. 10여군데 문예지의 청탁으로 14∼15편의 시를 한꺼번에 갈무리했기때문에 약간은 지쳐있다. 그러나 마음은 아직도 문학소녀같다. 그에게 더이상 창작은 고통이 아니다. 『안쓰고 살 수 있으면 참좋겠습니다. 그러나 안쓰는 고통보다는 쓰는 고통이 더 낫습니다』는 홍시인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여동은 기자>여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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