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증 피하고 자투리시간 활용하자’/할인매장·병원·인터넷카페까지/밤 깊어도 끊이지 않는 발길… 발길밤 12시 서울 서초구 잠원동 「킴스클럽」 매장은 불야성을 이루고 계산대 앞마다 고객들이 5, 6명씩 줄지어 차례를 기다린다. 비슷한 시각 서울 동대문 운동장 건너편 거평프레야 의류·완구매장도 주말 하오의 백화점을 연상시킨다. 밤 10시 마포구 신공덕동 「사랑의 전화」 어린이집에서는 선생님이 아이들을 재우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아예 잘 생각을 않고 놀이기구에 매달리는 아이에게서는 잠시도 눈길을 뗄 수 없다.
신세대 맞벌이부부가 늘어남에 따라 새로 생긴 밤 풍속도이다. 야간쇼핑센터 야간치과 야간탁아소 야간실내골프장 야간PC통신모임 등이 밤을 낮처럼 이용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지난해 10월 24시간 영업을 시작한 킴스클럽은 심야영업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하루 평균 고객 4,000여명 가운데 절반가량이 밤 9시∼새벽 2시에 몰려 든다. 24시간 영업을 시작한 이래 매출액도 30% 이상 늘었다.
새벽 1시가 넘어서도 1층과 지하는 가정용품·식료품·의류 매장 등을 가릴 것 없이 고객들로 붐빈다. 새벽 1시30분 남편과 함께 나온 김혜숙(33·서울 강남구 양재동)씨. 『맞벌이를 하다보니 쇼핑시간을 따로 내기가 어려워 주 1회 정도는 심야쇼핑에 나서요. 더구나 교통체증에 시달리지 않아 시간절약도 되고 기분도 상하지 않아 즐겁게 쇼핑할 수 있습니다』 새벽 1시에 물건이 가득한 카트를 밀고 다니는 부부의 모습이 조금도 이상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킴스클럽 우주명 계장은 『처음 심야영업을 시작했을 때는 주로 일이 늦게 끝난 사람들이 찾아 왔으나 지금은 맞벌이 부부가 데이트 삼아 찾아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주부들도 교통체증을 피해 심야시간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거평프레야도 마찬가지. 밤 12시가 넘으면 주변은 캄캄하지만 이곳만은 대낮이다. 8층 완구매장은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나온 애들의 투정소리로 시끌벅적하다.
강남구 방배동 카페골목에 있는 70여개의 옷가게도 심야쇼핑의 명소다. 이곳은 처음 술집에서 나온 손님들을 끌어 들이기 위해 몇몇 업소가 문을 열었는데 이제는 아예 심야 의류쇼핑타운을 형성했다. 이곳은 신세대 취향에 맞는 옷을 갖춘 가게가 많아 10대 후반∼20대가 밤늦게까지 복작거린다.
컴퓨터통신을 할 수 있도록 컴퓨터를 설치해 놓은 신촌과 압구정동의 인터넷카페도 밤이 깊을 수록 활기가 느껴지는 곳이다. 밤 10시가 조금 지나면 압구정동 N카페에는 심야통신족들이 「번개 모임」을 갖기 위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심야통신족 가운데 일부는 사이버 공간에서 밤을 휘젓고 다니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다. PC통신에서 대화를 즐기다 누군가 장소와 시간을 정해 「번개모임」을 제안하면 사이버대화가 곧 현실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이들은 대개 어엿한 직장인이다. 퇴근 뒤 정보를 얻기 위해 통신망의 이방 저방을 기웃거리다 누군가 「커피 한잔 하자」고 제안하면 밤 10시가 됐든 11시가 됐든 즉시 달려가 모이는 것이 이 모임의 특징이다.
직장인들을 위한 야간 병원도 생겼다. 낮에 업무에 쫓겨 병원 진료시간을 놓치기 일쑤인 직장인들에게 야간진료는 귀가 솔깃할 수 밖에 없다. 지난해 7월에 문을 연 강북구 번동 경희치과의 경우 환자의 20%가 야간진료 시간인 하오 7시30분∼9시30분에 찾아 온다. 치위생사 조수정(22)씨는 『직장인들의 반응이 좋아 늘 1주일 앞까지는 야간진료 예약이 끝나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맞벌이 부부를 위한 야간탁아소도 생겼다. 「사랑의 전화」는 야간선생님 1명을 두고 밤새 아이들을 돌보도록 하고 있는데 아직 이용자가 그리 많지는 않다. 유아교사 이소연(여)씨는 『주로 편부모나 야간근무가 잦은 병원 간호사, 맞벌이 부부 등이 밤에 애를 맡긴다』고 말했다. 헬스클럽 실내골프장에도 낮에 시간을 낼 수 없는 직장인들이 몰려 들어 땀빼기에 열을 올린다.<이진동 기자>이진동>
◎‘밤의 전령’ 우편집중국/하루 우편물 처리량 수백만통/누군가에 소중한 소식을 전하려/아침 6시부터 새벽 2시까지 작업 손길은 쉴틈이 없고…
서울 용산구 한강로 3가 우편집중국. 밤 12시40분께 정문에는 각 우체국으로 향하는 4.5톤 우편트럭이 쉴새 없이 드나든다. 규격봉투 편지와 엽서 등 소형우편물 분류작업이 한창인 3층 소형통상계 작업장은 대낮처럼 밝다.
우편집중국 직원 55명과 야간 아르바이트생 18명의 손놀림에 따라 지역별 분류함에 우편물이 차곡차곡 쌓인다. 전국을 70개 지역으로 나눈 선반앞에서 왼손에 우편물을 한움큼 움켜쥔 직원들이 오른손으로 정확히 우편물이 가야할 곳을 찾아 꽂는다.
「수도권 우편물 송달 속도 단축운동」 「선입선출 발송은 상식」 「당일처리 발송은 의무」 등 벽에 내걸린 플래카드가 손놀림을 재촉한다. 70개 지역 외에 우편물이 적은 곳은 따로 48개 칸으로 나눠 2, 3명이 분류작업을 한다.
광화문지역은 우편물이 많아서인지 다시 다섯칸으로 나뉘어져 있다. 분류함 옆에는 「소재지 행정지명과 다른 행정기관 및 단체 조견표」가 붙어 있다. 익숙치 않은 직원이 우편물을 잘못 집어 넣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성동고등학교는 성동우체국이 아니라 중앙우체국으로, 중부지방국세청은 중앙우체국이 아닌 송파우체국으로 보내도록 표시해 놓았다.
한켠에서는 광학문자판독기(OCR) 4대가 우편번호에 따라 서울과 지방 등을 20칸으로 분류해 착착 꽂는다. 대당 1시간에 3만통을 분류할 수 있다. OCR기옆에서는 아르바이트 학생들이 우편물을 기계에 넣을 수 있도록 가지런히 정리한다.
OCR기를 거친 우편물은 우편번호에 따라 바코드가 찍혀 나온다. 이 우편물은 다시 최종구분기(LSM)로 옮겨져 160개 칸으로 분류되는데 바코드에 따라 서울우편물은 동별로, 지방은 시·군별로 쌓이게 된다. 최종구분기도 4대인데 역시 1대가 1시간에 3만통을 분류한다. 우편번호가 흐릿하거나 정자로 씌어지지 않은 우편물은 OCR기가 읽지 못하기 때문에 영상색인기(VCR)가 처리한다. 우편물이 영상색인기를 거치는 동안 12명의 직원이 모니터를 보면서 우편번호를 다시 입력하는 반자동 방식이다. 규격봉투를 쓰지 않으면 OCR기나 VCR기가 분류해 내지 못해 일일히 수작업을 해야 한다. 우편번호를 제위치에 쓰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다.
아르바이트생 이종수(23·서경대2)씨는 『제대후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10월부터 일했다』며 『밤새 일하기 때문에 피곤하지만 땀의 대가로 한달에 60만원 가량 벌 수 있는데다 낮에 다른 일을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이 곳에서 처리하는 소형우편물은 하루 평균 400만∼500만통. 연말에는 인사장과 연하장이 많아 하루 700만통에 이른다. 평소에도 신용카드사의 대금청구용 우편이 쏟아지는 8∼18일에는 대개 700만통을 넘어선다. 이 가운데 약 65%인 400만∼450만통이 대금청구용이다. 서울시내 접수우편물과 서울 배달분 우편물량의 70%가 이곳을 거친다. 나머지는 동서울 우편집중국에서 처리된다.
김성룡 계장은 『우편물을 제때에 배달하기 위해서는 24시간 작업이 불가피하다』며 『우편번호만 제대로 써 줘도 한결 작업이 간편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새벽 2시가 되자 작업종료 사이렌이 울렸다. 작업은 아침 6시에 다시 시작돼 9시가 돼서야 끝났다.<이진동 기자>이진동>
◎국제전화 교환원/‘한밤중 세계와 세계를 잇지요’
국제전화 교환원은 외국과의 시차때문에 밤을 새는 사람들이다. 해외여행과 유학, 출장 등으로 외국나들이가 잦아지면서 한국통신과 데이콤의 교환원 직통전화를 이용하는 사람도 부쩍 늘었다.
교환원 직통전화는 외국에서 정해진 전화번호를 누르면 한국 교환원이 받아 원하는 곳에 연결해 주는 서비스. 외국의 문화나 언어에 익숙치 않아 집으로 전화를 거는 일이 부담스러운 중장년층이 주고객이다. 수신자 부담이고 교환원 서비스료는 따로 내지 않아도 된다.
이 때문에 에피소드가 많다고 데이콤 국제전화 교환원 홍은경(26·여)씨는 털어 놓았다. 『새벽에 걸 곳도 없으면서 전화해 오는 유학생들이 있어요. 교환원 아니면 우리말 듣기가 힘드니 그냥 아무 이야기나 나누자는 거예요. 외로워 못살겠다고 하소연하니 그냥 툭 끊기도 어려워요. 그래서 바쁘지 않은 시간에는 국내 뉴스나 프로야구 결과를 알려주기도 해요』.
어쩌다 교환원 이름을 알고 나서 집적거리는 사람도 있다. 『근무때마다 귀신같이 알고 전화하는 사람이 있어요. 다짜고짜 「홍은경씨 바꿔주세요」라고 해요.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다른 교환원들도 대개 그런 경험이 있어요』
데이콤의 경우 교환기 6기에 48명이 근무한다. 3교대여서 밤근무는 일주일에 두번 정도 돌아 온다. 밤 10시에 시작해 아침 7시에 끝난다. 바쁠 때는 2, 3통씩 한꺼번에 받아야 할 정도지만 새벽 3시가 넘으면 전화벨이 뜸하다.
『술취해 전화하는 사람이 제일 귀찮아요. 혼자 해외여행 나갔는데 집에서 전화를 안 받는다며 책임지고 연결하라고 화풀이라도 하듯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어요. 외국 나가서까지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이상연 기자>이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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