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혁명이전 영국왕 권력 의미/‘대권’용어 범람은 반민주 풍토 반영지난 10월5일 나는 화요세평에서 「대권주자란 말을 쓰지 말자」고 제안한 바 있다. 다행스럽게도 그후 방송과 주요 신문에서는 현저하게 대권보다 대선이란 말을 많이 쓰고 있는 것 같다.
96년 세모에 이 문제를 다시 끄집어내는 것은 내년엔 대선 정국이 전개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대권이란 말이 홍수처럼 범람할 것 같아 미리 「대권 남발」을 조금이라도 막아 보기 위해서다. 다시 얘기하지만 대권(Royal Prerogative)이란 말은, 시민혁명 이전 영국왕의 권력이나 일본의 메이지(명치)헌법에서 일왕 주권과 일왕 친정을 결합한 개념으로 쓰였다.
서구의 시민혁명은 바로 이 대권을 타도하고 새로운 시대를 연 역사적 사건이며, 근대적 의미의 민주주의는 바로 이 시민혁명을 출발점으로 하지 않는가.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우리나라에서는 대권이란 말이 아무런 반성없이 남용되고 있다. 애당초 민주적인 언어가 아닌 대권을 지식층이나 언론 매체에서 마구잡이로 쓰고 있는 것은 참으로 한심한 작태다. 한국인이 대권이란 말을 많이 쓰고 있는 것을 눈여겨본 한 외국 기자는 『한국에서는 정치인 뿐만아니라 국민 전체가 대통령병에 걸려 있다』고 비꼬았다.
이제부터는 기술적 의미에서 「대통령의 권력」의 약어로서 꼭 써야할 경우 외에는 대권이란 말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마구 쓰고 있는 대권주자는 대통령 선거에 뛰려고 하는 사람이란 의미로 대선주자라고 쓰면 되고, 대권후보도 대선후보로 바꾸는 것이 좋다.
이처럼 대권이란 말은 어원부터가 비민주적이며 대권이란 말이 횡행하고 있다는 자체가 반민주적 풍토를 반영한다. 대권은 절대 권력, 독재 권력, 요컨대 권력과 권위의 독점을 연상케 하며 민주적 사고의 근본인 수평적 사고에 장애가 되는 언어다. 오랜 「천황제」전통으로 수직적 사고에 익숙해 있는 일본에서도 언어의 민주화를 위해 왕실 언어를 「민주언어」로 바꾸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한국의 민주화는 이미 거역할 수 없는 대세이며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에로의 전환에서 공고화의 단계로 진입했다. 대권은 권위주의 시대의 타성의 산물이며 오늘의 시대정신에는 적절치 않다. 대권이 권위주의적인 특수 용어라면 대통령선거의 준말로서의 대선은 민주화시대의 보통언어로 아무런 저항감이 없다.
지난 1년간의 대선 논의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느냐에 관심을 가질 뿐 우리가 정녕 필요로 하는 대통령이 어떤 사람이라야 하느냐에 대한 심각한 고려는 별로 없었다.
언론도 이제부터는 내년 선거를 둘러싼 정계의 판도 변화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21세기 한국 정치의 바람직한 상이 무엇이며 그에 걸맞은 대선 후보의 자질을 본격적으로 점검하는 역할을 담당해 나가야 할 것이다. 신문과 방송의 정치 관련 부서가 「정계부」로 전락할 것이 아니라 21세기 한국 정치를 전망하는, 문자 그대로의 정치부로서의 위상과 영향력을 발휘해 주기 바란다.
절대다수의 일반 유권자는 의외로 대선 후보자들의 자질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으며 그러다 보니 실질보다 이미지에 좌우되기 쉽고, 고질적인 병폐인 지역주의로 승부가 가려질 가능성이 높다. 이번 선거만은 지역을 넘어서는 국민적 선택이 되어야 한다.
대선 주자들은 21세기 한국이 필요로 하는 인물, 이를테면 구조적 어려움에 직면한 한국 경제에 돌파구를 열 사람, 북한의 실체를 꿰뚫어 보면서 통일과정을 이끌어 갈 사람 그리고 통합능력과 문화의 의미를 아는 품격있는 사람으로서 자기의 역량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대권주의자」의 모습만으로는 결코 많은 표를 얻지 못할 것이다.<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장>고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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