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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거품을 제거하자/김태길 서울대 명예교수(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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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거품을 제거하자/김태길 서울대 명예교수(아침을 열며)

입력
1996.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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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다가오면 자연히 지난 한 해를 뒤돌아 보게 되고, 대개는 좋았던 일보다도 아쉬웠던 일이 더 많았다는 것을 결산보고처럼 말하곤 한다. 그러한 말 가운데는 겸손의 미덕도 들어있고 새해를 다짐하는 의욕도 담겨 있다. 그런데 96년의 경우는 겸손의 미덕과는 관계없이 정말 아쉬운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금년초에도 우리는 「희망찬 새아침」을 웃는 얼굴로 맞이했었다. 1인당 국민소득은 1만달러의 고개를 넘어섰으니 이제 더욱 가속도가 붙어서 선진국 대열로 뛰어들 날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문민정부는 정권 후반기에 들어섰으니, 「개혁」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고, 사회의 기강이 잡힐 것은 물론이요, 성숙한 의회정치의 모습도 기대되었다. 북한의 붕괴가 시간문제로 가시화하는 듯하였고, 통일을 대비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일이 부담스럽기는 하나, 길게 보면 그것도 희망의 징조로서 다가오는 듯하였다.

그러나 달력의 마지막 한 장의 끝줄을 들여다 보는 오늘의 분위기는 아주 다르다. 그동안에 잘한 일도 더러 있겠지만, 제대로 된 일이 별로 없는 것같은 암울한 느낌이 압도해 온다. 「설마 어떻게 잘 되겠지」하고 막연한 낙관으로 바라보기에 우리 현실은 여러면에서 매우 걱정스러운 모습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느낌이 강하게 밀려온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자세일 것이다. 마음의 자세가 흔들리면 모든 것이 허물어지고, 마음의 자세만 온전하면 불행한 일도 조만간 극복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그 마음의 자세에 문제가 있다.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풍조에 휩쓸려 가면서,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이다.

마음의 자세에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를 조목조목 따지기에는 지면이 너무 좁다. 다만 이 자리에서는 우리 마음속에 거품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만을 지적하고 우리가 다함께 마음의 거품부터 제거하자고 제언하고자 한다. 우리 자신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냉철하게 들여다 보자는 말이다.

근래에 경제개발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스포츠에서도 강국으로 부상하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약소민족으로서의 열등감을 극복하고 자신감을 얻게 된 것도 아주 잘 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작은 성공에 도취하여 약간 우쭐해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배포가 크고 호탕한 듯하여 보기에 좋은 점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겨우 날아 오르기 시작하는 단계에 이르렀을 뿐이며, 우쭐대거나 흥청거릴 계제에 이른 것은 아니다.

최근 아시아 축구선수권대회에서 연거푸 망신스러운 패배를 당했다는 보도에 접했을 때, 나는 그것이 우리나라 축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으로 느꼈다. 강대국 앞에서는 위축되면서 상대가 좀 약하다 싶으면 깔보고 우쭐대는 것은 한국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보여주는 폐단이다.

말끝마다 「철통같은 방위태세」를 호언하던 우리나라 군대가 북한 잠수함의 무장침투에 대하여 어처구니 없는 허술함을 드러냈을 때도 나는 같은 느낌을 가졌다. 북한을 너무 얕잡아 보고 방심하지 않았다면 그런 실수는 생길 수 없다.

지금 세계의 여러 나라들은 먹고 먹히는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치밀한 분석과 조직적 계획에 따라 이에 대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마음의 눈을 가리는 거품을 제거하고 우리의 현실을 정확하게 들여다 보아야 할 것이다.<철학문화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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