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등에 “식량 250만톤 부족” 지원 호소/치부 드러내며 관계개선 수단활용 계산도지난해와 올해 외국으로부터 최소한 식량 90만톤 이상을 지원받았던 북한이 다시 기아 외교에 나섰다. 북한 고위 당직자들은 독일과 일본 등을 상대로 노골적으로 궁핍한 식량사정을 호소하고 있다.
노동당 당중앙지도원 황철은 지난 13일 일본에서, 대북지원 활동을 벌이고 있는 민간단체협의체인 「아후무(AFM)」 대표들에게 『식량 250만톤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황철은 김일성의 일본어 통역을 맡았던 비중있는 인사다.
이에 앞서 11일 김영남 외교부장은 독일 공영TV인 ZDF와의 인터뷰에서 북한경제가 붕괴위기에 처해 있다고 시인했다. 북한은 서방언론으로는 이례적으로 ZDF에 군부대까지 공개하며 북한 전역 취재를 허용했다.
세계식량계획(FAO)과 식량농업기구(WFP)도 지난 6일 북한이 97년 추수기까지 식량 230만톤이 부족한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는 「특별보고서」를 발표, 북한을 거들었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북한의 농업부흥을 지원하기 위해 중국 농업전문가들을 북한에 파견키로 하고, 미국 워싱턴의 한 국제기관에서는 북한의 식량배급이 노인과 어린이들에게 단계적으로 중단되고 있다고 평가하는 등 북한 식량난을 부각시키는 외부의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그러나 10월 추수 이후 북한이 1인당 배급량을 종전 200∼250g에서 450g으로 두배 이상 늘린 것이 확인되는 등 올해 식량수확 사정이 지난해 보다 호전됐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FAO·WFP도 특별보고서에서 북한이 올해 지난해 345만톤보다 100만톤가량이 많은 430만톤을 수확했으나 옥수수 116만톤을 조기에 소비했기 때문에 내년 식량사정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생산 자체가 부진했다고 보지는 않는 것이다.
정부가 추정하는 올해 북한의 곡물수확량은 지난해보다 많은 370만∼380만톤. 평년수확량인 420만∼430만톤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통계에 잡히지 않는 중국의 지원분을 합치면, 북한이 일단 한 숨 돌릴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물론 휘발유 부족 등으로 인한 배급체계의 문제는 논외로 했다.
특히 중국은 지난 8월께 베이다이허(북대하)에서 고위 회의를 열고 북한을 더 이상 내버려두지 않고 적극 개입, 지원키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 『중국이 매달 5만톤 이상을 북한에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옥수수의 조기소비나 배급량 확대설 등을 대책없는 「먹고 보자」식 정책이라고 볼 수 없다』며 『북한 당국이 중국 등의 지원을 전제로 식량배급에서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게 된 것으로 풀이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김정일이 직책승계와 체제개혁을 위해 대 주민 선무작업 및 분위기 조성에 돌입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기아외교는 서방국가에 접근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으로 계속 활용 되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부터 식량난을 통해 인도주의라는 순수한 차원에서 국제사회의 관심을 모았으며, 한미간에 대북 지원을 놓고 이견이 발생하는 등 부분적으로 경제·외교적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북한은 스스로 치부를 드러내 놓으면서 서방세계와의 관계개선을 목표로, 기아외교를 계속하고 있는 셈이다.<김병찬 기자>김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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