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북 이형철 “내 명의로” 첫 타진/20일 양보안 제시·평양복귀 위협/당국자 명의·“우리말 병행” 타결「백배천배 보복」위협을 「깊은 유감」으로 바꾸기까지 남북한은 미국을 통해 밀고 당기는 공방전을 거듭했다.
20일간의 협상과정에서 북한은 사과문제 자체에서부터 딴전을 피우기 시작, 사과의 주체 대상 문안 경로에 대한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여 보고자 했다.
사과 논의가 처음 가닥을 잡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일. 이형철 북한외교부미주국장은 『내가 (개인명의로)뉴욕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미국에 대한 입장을 밝히겠다』고 사과의사를 처음으로 밝혔다.
그러나 이 카드가 어림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20일에 『위임을 받아서 내가 하면 어떻겠느냐』는 「양보안」을 제시하면서 『23일까지는 평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은근히 「위협」까지 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가 「책임있는 당국자가 한국정부에 사과하지 않는다면 협상이 깨져도 좋다」며 강공으로 버티자 26일에야 입장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사과 문안과 경로에 관한 협상도 마찬가지였다. 정부는 당초 사과에 「남조선 영해를 침범하여」라는 표현을 요구했다. 그러나 북한은 「좌초」라는 입장을 끝내 고수, 「강릉해상에서의 잠수함 사건」이라는 표현을 고수했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정부는 보강차원에서 재발방지 약속을 얻어냈다』고 하지만 사과문은 「인명피해를 초래한… 잠수함사건에… 유감을 표시하고…그런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것으로 의미가 애매해졌다.
사과경로도 북한은 당초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영어로만 하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는 『영어로 하면 누가 우리에 대한 사과로 이해하겠느냐』고 막판 밀어붙이기를 시도했다. 그 결과 대외방송인 평양방송의 우리말 사과를 얻어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측은 이외에도 처음에는 「북측」 「남측」 등의 용어를 주장했으나 사과의 공식성을 높이기 위해 우리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용어를 요구했다』고 밝혔다.<장인철 기자>장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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