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분노의 세모(김성우 에세이)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분노의 세모(김성우 에세이)

입력
1996.12.30 00:00
0 0

지난주 국회에서의 노동관계법과 안기부법 개정안 등의 여당 단독 기습 통과는 우리가 수다하게 보아 온 정치극이라 해서, 그때마다 국민이 분노했지만 그 법이 실효된 적은 없다고 해서, 이번에도 기정사실로만 넘겨버릴 일이 아니다. 현 정권이 누누이 강조하듯이 지금은 시대가 다르다. 지나온 20세기와 다가오는 21세기가 다른 것만큼이나 그 폭거가 주는 정치적 색상은 판이하다.대한민국의 건국사 반세기는 한마디로 민주화의 역사다. 생소한 민주주의를 일찍이 심어본 적이 없는 이 땅에 이식하면서 많은 피를 흘렸다. 민주화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정의였고 모든 것에 우선하는 가치가 되어 왔다. 그 결과 오늘의 정권에 이르렀고 현 정권은 우리 민주사에서 가장 민주적인 정권으로 스스로 자부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 정권의 가장 무거운 멍에는 아직도 미진한 민주화의 심화요 다른 위협으로부터의 민주주의의 방어일 것이다. 과연 지금 그 책무를 다하고 있는가. 그 본의가 단적으로 표출된 것이 이번의 날치기 국회다.

민주주의는 종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는 도정이다. 고쳐야 할 법안이 아무리 정당성이 있고 긴급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럴수록 그 과정이 민주주의의 갓길을 폭주하고 있어서는 안된다. 야당이 주장하는 국회법 위반 여부는 별개로 하더라도, 형식적인 합법 절차는 가장된 민주주의다. 민주주의의 가장 위험한 적은 민주주의를 위장하는 것이다. 합법적이기만 하면 다 민주적인 것은 아니다. 모든 독재도 형식적으로는 모두 합법적이었다. 합법이전에 정도라야 한다.

여당측은 강변한다. 『다수에 대한 소수의 힘의 행사가 권위주의 시대라면 대의의 구현으로 국민적 이해를 받았겠지만 이제 민주주의 시대에 소수의 횡포는 다수를 지지해준 국민의 주권을 횡령하는 것이다.』 이렇게 여당은 현 정권담당자들이 야당이던 군사정권 시대의 극한투쟁을 합리화하면서 현재 야당의 꼭 같은식 저항에 책임을 전가시킨다. 집권층이 야당이던 시절의 집권당의 구태를 되풀이해 놓고 지금은 권위주의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살짝 문민의 논리로 변장한다. 그러나 오히려 지금은 권위주의시대가 아니므로 그런 구태가 되풀이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리고 권위주의 시대에도 어떤 형식으로든 「다수를 지지해준 국민의 주권」은 있었던 것인데 그 다수가 군사정권의 병졸에 지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면 이번 기습작전에서 보여준 집권당의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일사불란은 무슨 이름의 권위주의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인가.

야당측에서는 여당 단독의 변칙처리를 「의정 쿠데타」라고 규탄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쿠데타가 아닐 것도 없다. 쿠데타란 한 집단이 정치권력을 탈취하거나 기득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비합법적인 무력 수단으로 기습하는 것을 말한다. 이번 날치기는 현정권이 내년의 대선을 앞두고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다수의 폭력으로 기습을 한 것이다. 의회정치에서 소수를 추방하는 다수의 횡포는 폭력이요 정권의 폭력은 무력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모든 폭력은 비합법적인 것이다. 이땅에 군사 쿠데타만 발을 못붙이게 특별법을 만들 것이 아니다. 문민쿠데타도 봉쇄할 조치가 필요하다.

야당의 원천방해를 핑계대는 것은 「폭력에는 폭력으로」라는 말밖에 안된다. 야당의 구태의연한 행태가 비민주적이라 해서 여당의 대응조차 비민주적이어서는 안된다. 군사정부 시절에는 야당이 민주화를 선도해 왔겠지만 문민정부에서는 여당이 민주주의를 이끌어가야 한다. 이것이 시대가 바뀌었다는 뜻이다.

민주주의는 만능이 아니요 반드시 능률적인 정치체제인 것도 아니다. 능률면만 본다면 오히려 독재주의가 더 유용할 때도 있다. 국리와 민복의 희생이 안타깝다 하더라도 인내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고난이다. 세계화의 기반이 민주화라면 결국은 이 고난이 국익을 위해 보상받는 날이 오고야 만다.

민주주의는 많은 대가를 요구한다. 쟁취를 위해 흘린 피만 대가가 아니다. 육성과 수호를 위해 치러야 할 희생도 대가다. 아무리 목적이 신성해도 정부의 자의대로 되지 않는 것 또한 전제주의와 다른 민주주의의 대가다. 날치기 국회는 이 대가를 거부한 것이다.

이 세모의 분노는 또 한바탕 소나기로만 지나고나면 금방 도로 말짱해지고 말 것인가.<본사논설고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