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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방향의 96년 남북관계(남북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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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방향의 96년 남북관계(남북회랑)

입력
1996.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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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의 남북관계는 대결의 골이 깊어졌다는 의미에서는 분명한 변화를 가져왔었다. 골이 얼마나 깊어졌던 것인가. 김정일군사체제 5년간 북한은 줄곧 군사우위정책을 펴왔던 것인데 그 결과 잠수함침투같은 현실도발로 나타났고 대신 남한은 햇빛론 환상을 갖고 군사도발 위험을 멀리하고 있다가 북의 도발을 받아 허둥댄 사태를 빚어 남북간 사이가 동과 서가 먼 만큼이나 먼 것을 인식하게 됐던 것이다.북한은 지난 23일을 김정일의 군최고사령관 추대 5주년 기념일로 보내면서 거국적인 기념행사를 가졌다. 수도 평양을 비롯한 각 지역별로 집회를 열고 김정일 옹호를 위한 한발의 총폭탄이 될 것을 다짐하기도 하고 충효로 김정일통치를 결사옹위하겠다는 결의를 하기도 했다. 지방에서는 김정일 최고사령관에 대한 충성편지를 쓴 후 이것을 들고 97년 2월의 김정일생일날까지 평양에 도착하기 위한 이어달리기를 시작했다.

96년의 북한군의 모습은 매우 도전적이었다. 김정일이 지난 5년간 최고사령관으로 있었던 인민군의 당연한 귀결이다. 군대는 기본적으로 싸우는 집단이다. 없는 적도 만들어야 하고 적이 있으면 반드시 죽일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갖춰야 존재이유가 서는 것이 군이다. 김정일은 92년 12월23일 북한군 최고사령관직에 오른 후 김일성의 남북수뇌회담 계획이 어떻게 진행되든 카터가 어떤 임무를 띠고 평양에 왔든 남한이라는 적을 향한 북한군의 적개심을 키우고 남한을 무력으로 제압할 능력을 키워왔던 것이다. 군최고 사령관으로서는 당연한 업무다. 그러나 그가 북한최고지도자가 되는 과정에서 먼저 군최고사령관을 맡은 것이 확실히 잘못된 것이었다. 김일성이 만일 남북한이 결국 전쟁아닌 대화의 길로 합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면 이런 지도자양성의 길은 택하지 말았어야 했다.

김정일은 군최고사령관으로 먼저 권력을 잡기 시작한 후 군의 편에 서서 군대식으로 생각하게 됐고 그 결과로 북한사람들이 말하는 꺾는 해(5년, 10년등)인 취임 5주년을 결산하면서 판문점공동경비구역을 침범하고 (5월), 강릉 잠수함침투사건을 벌였으며(9월), 연세대 한총련사건(8월)에도 엄청난 선전공세를 폈던 것이다. 대신 남한은 군을 모르는 문민정부가 들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군은 먼산만 바라보다가 강릉잠수함 침투사건같은 것을 연출하게 됐다. 남북이 군사적으로 역방향으로 갔던 결과였다.

차라리 남북이 평행선 방향으로 간 것은 경제분야다. 경제규모야 남북한이 20배이상 차이 나지만 남북한 모두 경제하락국면을 맞았다. 한국은 경제성장이 8%대에서 6%대로 낮아지고 외채가 1,000억원대에 접어들면서 크리스마스경기도 죽고 새해전망도 죽는 다는 한탄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북한은 아마도 남한의 경제침체 뉴스를 들으면서 일말의 동질감 같은 것을 느낄지 모른다. 추락한다는 입장에서는 같기 때문이다. 남한도 경제성장이 불과 2%내리고 6.7%라는 성장속도를 지니고 있는 데도 경기하락의 압박을 이만큼 느끼는데 지난 5년간 내리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북한의 경제참상이 어떻겠는가를 짐작할 만한 것이다. 국가간 협상이나 대화는 군사적으로 평행선으로 갈 때 이뤄지는 것이지 역방향에 서 있으면서는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다. 96년을 마감하면서 남북관계의 역방향 부문이 가져왔던 교훈을 찾아내야 한다.<정일화 논설위원 겸 통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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