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죽마타고 온동네 창문 두들겨/스위스짚·사슴뿔로 무섭게 분장 소란/네덜란드뿔나팔 불며 도리깨·채찍 휘둘러96년의 마지막 자정에 이탈리아 주택 골목가를 무심히 지나다간 난데없이 하늘에서 날아온 헌 소파에 맞아 다칠지도 모른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순간, 소리를 지르며 못 쓰는 가구를 창밖으로 집어던지는 액땜풍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21세기를 눈앞에 둔 지금도 12월31일 세계 곳곳에서는 이처럼 특이한 세밑풍속이 등장한다. 이날은 양력을 기준으로 한 한해의 마지막 날이기 때문에 풍습의 대부분은 유럽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12월31일에 등장하는 풍습들의 가장 큰 특색은 「시끄럽다」는 것이다. 못된 악마를 쫓아내기 위함이다.
독일 괴팅겐대학의 롤프 브렌디히 교수는 『예로부터 유럽인들은 한해의 마지막 날은 악마들이 가장 활개를 치는 때로 여겼다』고 말한다. 오스트리아의 살츠카머구트지방 사람들은 이날 자정이 다가오면 죽마를 타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창문을 두드리는 등 소란을 피워 악령을 쫓는다. 스위스의 아펜첼에서도 짚 소나무가지 사슴뿔 등으로 무섭게 꾸미고 마을을 돌아다닌다. 네덜란드에서는 일제히 뿔나팔을 불고 도리깨와 채찍을 휘둘러 큰소리를 낸다. 뉴욕 파리 시드니 등 대도시에서 수십만명이 모여 불꽃놀이와 함께 시끌벅적하게 세밑행사를 벌이는 것도 악마쫓기에서 유래한다 할 수 있다.
악마쫓기 뿐 아니라 소원을 빌기도 한다. 독일의 라인란트지방에서는 이날 자정에 과일나무를 흔들어대면 자식복이 생긴다고 믿는다. 특히 발가벗고 흔들어야 효험이 크다고 여겨지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미혼남자들이 어머니나 할머니로부터 받은 붉은 속옷을 옷위에 입고 돌아다니면 사랑과 건강이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젊은 여인들은 어깨 너머로 신발을 던져 신발끝이 향하는 방향에 올해 만날 연인이 살고 있다고 여긴다.
금기시하는 것도 많다. 유럽에선 집안에 빨래를 널면 다음해 식구 가운데 죽는 사람이 생긴다는 미신이 있다. 빨래는 수의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머리나 손톱을 자르거나 손톱에 물을 들이는 것도 금기시한다. 집안일을 하면 귀신이 화를 낸다며 이날은 되도록 일을 하지 않는다.
낟알이 작은 곡식으로 만든 음식이나 비늘을 떼지 않은 생선을 통째로 먹으면 복을 받는다고 믿는다. 전통적으로 세밑에 덴마크인들은 고등어를, 독일인들은 잉어를 먹는다. 이탈리아에서는 다진 고기를 채워넣은 족발을 콩과 함께 먹어야 내년 재수가 좋다고 생각한다.<김준형 기자>김준형>
◎일본/지구촌의 송구영신 세밑풍속과 표정/서민들 체감경기 꽁꽁/우울한 연말 침울한 상가
일본의 세밑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해이세이(평성)불황으로 불리던 긴 불황 터널을 벗어나 경기가 회복세에 접어들었음은 여러 지표에서 확인되고 있지만 상가와 서민들의 체감경기는 아직 차갑기 때문이다.
재정구조 개혁을 위해 내년부터 소비세를 3%에서 5%로 인상하고 의료비의 본인부담을 늘리는 등 복지비용의 수혜자 부담률이 커질 것이 확실해 서민의 주름살은 더 늘어가고 있다. 여기에 구조조정, 고용축소, 직장이지메 등 샐러리맨들에게는 세밑을 더욱 우울하게 하는 얘기들이 들려온다. 직장 동료들이 회사측의 사주를 받아 특정사원을 괴롭혀 사표를 내게 만드는 직장이지메는 이제 공식용어화했다.
그간 안전지대로 여겨지던 관리직에도 정리해고 바람이 불고 있다. 노조원이 아닌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쿄(동경)관리직유니온에는 해고위협을 상담하는 전화가 10월 이후 매달 1,000여건 이상으로 늘었다.
기독교신자가 거의 없고 크리스마스가 휴일이 아닌 일본이지만 예년의 경우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백화점과 상가는 북적대기 마련이다. 그러나 올해는 양상이 다르다. 곳곳에 가두 세일코너를 마련하고 목이 쉬도록 손님을 부르지만 매상고는 신통치 않다고 입을 모은다. 결국 파격세일을 넘어 제살 깎기에 가까운 가격파괴 경쟁이 치열하다. 상품의 가격표가 하루에도 수차례씩 바뀐다.
올해초 신주쿠(신숙)역 내에 움직이는 보도를 건설하기 위해 도쿄도가 강제퇴거시켜 사회문제가 됐던 「홈리스(노숙자)」들에게 세모는 더욱 괴로운 계절이다. 우에노(상야)공원 등에서 천막을 치고 햇빛을 즐기던 이들은 지하철 역구내로 복귀, 골판지상자안에서 연말연시를 버티고 있지만 언제 다시 쫓겨날지 불안하다.
긴자(은좌), 아카사카(적판) 등 도쿄 유흥가의 택시승강장에는 밤 12시께면 송년회에 참석하고 귀가하는 이들로 긴 줄이 형성된다. 그러나 발을 동동거리며 택시를 기다리는 중년 「아버지들」의 어깨는 왠지 힘이 빠져 보인다.<도쿄=신윤석 특파원>도쿄=신윤석>
◎미국/지구촌의 송구영신 세밑풍속과 표정/증시 호황 보너스 열풍/돈바람에 취한 뉴욕 월가
세밑의 뉴욕 월가에 사상 최대의 보너스 열풍이 몰아쳤다.
70개월째 이어지는 미국 경기의 확장국면과 주가의 수직 상승세가 월가 금융중개인들의 연말 보너스에 두툼히 반영된 것이다.
올 연말 보너스만 100만달러 이상을 수령한 월가의 「고액연봉자」는 지난해 보다 2∼3배 많은 1,500명 가량.
특히 지난해 150만 달러의 보너스를 받은 투자은행 임원들은 올해 200만∼230만달러를 챙겼으며 월가 샐러리맨의 평균 급여도 두둑한 연말 보너스 덕분에 80년대보다 30%정도 인상됐다는 분석이다.
대표적 투자금융회사인 모건 스탠리는 지난해 대비 30∼40% 증가한 연말 보너스를 이미 지급했고 골드먼 삭스, 메릴 린치 등도 신임 투자은행원들에게 12만5,000달러의 추가 보너스를 제공했다. 가히 「골드러시」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거센 돈바람이다.
월스트리트의 보너스 「풍년」은 주식시장의 활황으로 이미 예고됐었다. 다우존스 지수가 11월 한달동안 500포인트 급등하는 등 6,500선을 넘나들면서 월가의 각 기업들은 영업역사상 최대의 수익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대개 월가에서 수익 증가기업과 감소기업의 비율은 매년 3:2 꼴이었지만 올해만큼은 수익이 마이너스로 떨어진 회사는 눈씻고 봐도 찾기 힘들 정도다.
때문인지 맨해튼의 고급 유흥가와 백화점들은 어느 해보다 풍성한 세밑 대목을 맞았다. 특급호텔과 유명 레스토랑은 연일 초호화 연회로 들썩거리고 있다. 월가 부자들의 트레이드 마크격인 영국제 재규어 자동차부터 한벌당 3,000달러가 넘는 양복, 수십만 달러짜리 다이아몬드까지 각종 고가품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심지어 맨해튼 중심가의 부동산 가격마저 최근들어 동요 기미를 보이고 있다.
반면 금융인을 제외한 샐러리맨들의 심사는 편치않다. 월가 금융중개인들의 급여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반면 일반 직장인들의 급여인상률은 6년째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이상원 기자>이상원>
◎러시아/지구촌의 송구영신 세밑풍속과 표정/해외여행 등 새 조류 불구/아직도 ‘부어라 마시자’
러시아의 세밑은 노브이 루스키(신 러시아인) 계층이 등장하면서 그 풍속도가 많이 달라졌다.
가까운 이웃이나 친지를 불러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한해를 되돌아보던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반면 러시아를 떠나 해외의 유명 휴양지에서 새해를 맞는 경향이 크게 늘고 있다.
각급 학교가 겨울방학에 들어가는 28일 이후 터키, 몰타, 그리스, 이집트 등 따뜻한 남쪽나라로 향하는 비행기 좌석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새해 연휴를 이용해 탈러시아를 유혹하는 여행사들이 12월 초 이미 비행기표를 매점했기 때문이다. TV나 신문, 길거리에는 삶의 재충전을 내세워 단체여행객을 모집하는 광고들이 넘쳐나고 있다.
또 고급 호텔 레스토랑이나 나이트클럽 등도 외국산 샴페인과 값비싼 요리를 즐기며 새해를 맞으려는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과거에는 결코 볼 수 없었던 풍속도다.
그러나 러시아의 보통사람들에게 새해맞이는 여전히 질펀한 술판이다. 이들은 섣달 그믐날 욜로츠카로 불리는 트리 곁에 둘러앉아 밤이 깊어가기를 기다린다. 이때 여성들을 중심으로 새해운수를 점치는 별점을 본다.
1월1일 자정 5분전, 대통령이 TV를 통해 신년사를 낭독하면서 새해맞이는 절정을 향해 달린다. 신년사가 끝나고 TV 의 시계가 0시 정각을 가리키는 순간, 앞에 놓인 샴판스코예(샴페인)를 요란하게 터뜨리며 서로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술잔이 끝없이 돌아간다.
새해 아침 8∼9시까지 계속되는 술판은 그 후유증도 만만찮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에 산책을 나왔다 길바닥에 쓰러져 동사하는 사람도 꽤 있다. 96년 새해 연휴기간에 길바닥에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진 사람은 모스크바에만 97명에 달했다. 이중 17명은 끝내 사망했다.
어린이들의 새해맞이는 제드 마로지(추위의 할아버지)에 대한 기대로 설렌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차림의 제드 마로지가 섣달 그믐날 새해 선물을 나눠주기 위해 자신의 방을 찾아올 것으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모스크바=이진희 특파원>모스크바=이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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