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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난초’/한국화가·홍익대 교수 송수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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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난초’/한국화가·홍익대 교수 송수남

입력
1996.12.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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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한 난초의 미 탁월하게 묘사/G선의 떨림같은 가냘픔/그 속의 고고함 그대로 담아/중학시절이후 즐겨 외워난초를 보면 정지용님의 시 「난초」가 읊조려진다. 내가 이 시를 처음 접한 것은 한국전쟁직후 중학교 시절로 기억된다. 예술이니 낭만이니하며 천방지축으로 나뒹굴던 시절에 본 「난초」는 시의 운율과 그 속에서 펼쳐지는 은근한 형상성이 한동안 가슴깊이 남아있었다. 돌이켜보면 적지않은 세월이 흘렀건만 유독 정지용님의 이 시를 대할 때마다 새삼 아련하게 가슴이 저려옴은 힘겨운 소년시절을 함께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내 작업실에도 난초가 있다. 햇빛이 들이치는 창문 앞에 서있는 난초의 자태는 자못 신비롭고 은근한 위엄이 있다. 가냘픈 난초잎이 미세하게 흔들리기라도 하면 부드럽고 고즈넉한 바이올린 G선의 떨림을 듣는 것 같은 환청에 빠지곤 한다. 난초를 키우기는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잎잎마다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 하고 고르게 햇빛을 쬐지않으면 잎이 균형있고 매끈하게 뻗질 않는다. 물의 양을 조절하는 것도 까다롭고 또 난초와 키우는 사람의 마음이 교감하지 않으면 꽃이 피지않는다. 달리 말하면 난초와 사람의 마음이 하나가 되었을 때 비로소 꽃으로 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난초는 여자에게나 남자에게나 수양을 쌓는 하나의 방법이 되고 있다. 더욱이 그 꽃은 일년에 한번 피움으로써 신비감을 더한다.

순결한 신부처럼 소담스럽게 피어나는 꽃은 바람결에 따라 은은한 향기를 간직한다. 결코 진하지않은 냄새이건만 그것은 사람을 취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이를 두고 옛분들은 향문십리라고 했던가. 마치 엷은 안개와 꿈 속에서 지내는 듯한 감미로움이 신방에 들어온 느낌과 같다. 며칠동안 꽃향기에 취해 지내다 보면 꽃잎은 시나브로 져버린다.

정지용님의 시는 간결한 난초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난초를 설명하는 빼어난 시어는 몇줄기의 잎으로 거침없이 허공을 분할하는 난초의 범접할 수 없는 기풍을 묘사하기에 충분하다. 사군자중 으뜸으로 꼽혔던 난초의 품격이 고운 언어속에 그대로 담겨 있다. 마치 풀을 잘 먹여 사각거리는 선비의 두루마기와 같은 단정함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난초를 노래한 하고 많은 시중에서도 오늘날까지 정시인의 「난초」를 즐겨 외우고 있는 것이다.

내 방에 있는 난초가 최근 꽃을 피웠다. 물을 주고 온도를 맞추는 등 어렵게 공들여 피운 꽃이 탈도 많고 다툼도 많은 이 세상을 보고 돌아누워버리지나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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