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헝가리와 체코를 비롯한 동구권을 여행한 적이 있었다. 개방의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았던 당시, 동구권의 여러 국가들은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때 내가 둘러본 곳은 부다페스트나 프라하와 같은 동구권의 대표적인 도시들이었다. 이런 대도시를 벗어난 지역의 경제적 상황은 훨씬 심각하다고 들었다.자본주의 나라에서 살아왔던 나에게 동구권에서 겪었던 여러가지 고생은 그야말로 「불편함」 자체였다. 그래서인지 가끔 가다 만나게 되는 한국 관광객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불편한 나라는 다시 여행하고 싶지 않다』는 푸념을 했다. 물론 이런 푸념 뒤에는 그들의 경제적 낙후를 비웃는 얄팍한 우월감이 숨어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 여행기간 내내 나는 주눅이 들어 있었다. 그들에게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문화의 저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구권에서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곧 문화예술에 대한 식견을 높이는 것과 같다고 한다. 자본주의식의 오락문화와 접할 수 없었던 그들은 틈만 나면 오페라와 발레, 연극과 클래식음악을 즐겼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가 전문가 못지 않은 비평안을 가지고 있었다.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동구권에서의 공연에 각별히 신경을 쓰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한다.
그때 동구권을 둘러보면서 나는 그들이 수백년 동안 쌓아온 문화예술의 뿌리깊은 저력을 피부로 느꼈다. 그것은 죽어있는 전통이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는 살아있는 전통이었다. 이런 문화의 역동성이 그들보다 훨씬 풍요로운 자본주의 나라의 나를 주눅들게 했다. 우리보다 훨씬 다양한 정서적 풍요를 누리고 있는 그들에게 일종의 열등감을 느꼈다고나 할까.
한 나라가 선진국인가 아닌가를 가늠하는 정신적인 척도는 문화예술에 대한 그 나라 국민의 의식에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선진국 가도는 파행성을 면치 못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먹고 사는 것에 급급한 나머지 풍요로운 삶의 한 부분을 채워주는 문화예술의 가치를 외면하고 만 것이다. 이제 물질적 풍요를 이루었으나 정작 그 풍요의 기반이 될 정신적 지주가 없으니 그 풍요로움마저 공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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