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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문학상 수상 전경린씨/주부로 습작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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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문학상 수상 전경린씨/주부로 습작 시작

입력
1996.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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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2년만에 영광/“제 소설은 사회와 차단된 여자들의 갇힌 삶서 비롯”제 29회 한국일보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전경린(34)씨는 『그저 황송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아직 차례가 아닌 것 같은데 막상 상을 받게 되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문단에 발을 들여놓은 새내기 소설가이기 때문에 그럴 법도 하다.

대중에게 얼굴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지금까지 발표한 작품이 채 10편도 되지 않으니 큰 상의 무게가 뿌듯함 보다는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함께 본심에 올랐던 작가들의 명단을 보면서 『환상적으로 존경하는 분들』이라며 정말로 부끄러워한다.

문학평론가 황현산씨는 전씨를 「귀기의 작가」라고 한마디로 표현했다. 조금은 새침한 여인의 모습, 꾸밈없는 사투리 등 외모와 행동에서는 그 귀기를 찾아내기 어렵다. 그러나 그가 펜 끝으로 집약한 정신의 세계에는 현대 문명사회에서 부속품처럼 살아가는 인간의 한과 원혼이 거미줄 처럼 얽혀 떠돈다. 「모든 자유를 가진 것 같지만, 원하는 것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 전경린의 소설은 여자들의 갇힌 삶에서 비롯된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구성원의 절반인 여자에게 불평등하고 신뢰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부로 살다보면 문득 사회와 교감의 선이 차단돼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자신에게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고 저항감을 쌓아가는 거죠. 주부라는 것 자체가 병적일 수도 있어요. 많은 여자들이 일탈의 벼랑에 서 있습니다』 얼마전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던 주부들의 윤락행위, 혀를 내두르게 하는 거액의 도박판 등이 어찌보면 우리 사회의 여성 억압 구조가 만들어내는 당연한 산물일지도 모른다는 견해이다.

그러나 극단적인 현상은 일부분이고 대부분의 여자들은 파괴적으로 그 모습을 표출하지 못한다. 전씨에게 있어 글쓰기는 그 껍질을 부수고 자기를 밖으로 풀어내는 작업이다. 창작의 고통이 따르지만 고통을 고통없이 받아들이는 영역이 그에게 있어서는 글쓰기이다.

전씨는 소설을 발표하면서 『많은 자유를 얻어내고 있다』고 말한다. 그 속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키고, 환상의 세계를 넘나들고, 나아가 현실을 자기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겠다는 당찬 꿈을 꾼다.

그의 글은 공격적이다. 얼버무리지 않고 매몰차게 몰아부친다. 『몸안에 짐승같이 꿈틀거리는 무엇인가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의 작품이 조금 기괴하게 비칠지도 모르죠. 그러나 그 꿈틀거림이 창작의 원동력입니다』

「염소를 모는 여자」는 어찌보면 전씨의 이러한 문학관을 집약시켜놓은 듯하다. 이 소설은 가정이라는 연약한 구조를 확실하게 파괴하고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여자의 일탈을 몽상적으로 그리고 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키우는 염소, 머리가 돈 청년의 요란하지만 솔직한 광기 등 현실에서 상상할 수 없는 판타지가 분위기를 이끈다.

『염소는 우리 주위에서 오래전부터 함께 살아왔지만 문명에 합의하지 않는 짐승입니다. 주인공 윤미소는 그 염소에 자아와 자신의 권태와 해방의 욕망을 실어 숲에 도달하려 하지요. 미친 청년을 등장시킨 것은 병적인 사람이 오히려 진실을 함축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입니다. 소설이 현실을 배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의 고통에서 탈출하는 방법이 허방다리같은 환상의 세계에만 존재하기 때문일까. 전씨는 이렇듯 무의식의 세계에 많이 기대어 왔다. 그러나 이제 자신의 문제를 많이 해결한만큼 다른 쪽에도 관심을 기울일 예정이다.

경남 함안 출신인 전씨는 마산여고와 경남대 독문학과를 나왔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줄곳 남해의 짠내음을 맡고 살고 있다. 학교를 졸업한 후 마산KBS에서 음악담당 객원PD로 근무했고, 방송 구성작가로도 활동했다.

연애와 결혼, 출산 등 보통의 여자들처럼 평범하게 살다가 둘째를 낳고 93년부터 습작을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소설 수업을 받은 것은 소설가 김웅씨의 문학강좌를 통해서이다. 마지막 수업에서 『박경리씨 같은 위대한 소설가가 나오길 빌겠다』는 김씨의 덕담에 보답이라도 하듯 그는 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사막의 달」로 당선됐다. 그리고 1년 가까운 산고 끝에 95년 겨울 「염소를 모는 여자」를 발표했고, 지난 7월에는 그동안의 중·단편소설 8편을 모아 「염소를 모는 여자」를 표제로 소설집(문학동네간)을 내놨다. 내년 3월께는 장편소설을 펴낼 예정이다.

『저에게는 상이 아니라 채찍이죠. 우리의 현실이 본질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집어내고 그것을 글로 쓰겠습니다. 작가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제 소설에서 무언가 배울게 있다면 더욱 좋겠지요』<권오현 기자>

◎심사평/“상상력의 당당함에 매료”/양적 팽창 대응 첫 예심제도 도입

올해 한국일보 문학상(상금 500만원)에는 예심제도가 도입된 것이 특색이다. 이 나라 창작계의 양적 팽창에 대응하기 위한 장치라 할 것이다. 예심에서 올라온 작품은 중단편 모두 10편이었다. 저마다 개성이 뚜렷한 수준작들임엔 틀림이 없으나 우리의 관심이 많이 머문 작품으로는 「내 인생의 4.5초」(성석제)가 지닌 날쌘 속도감, 「조매제」(서하진)가 안고 있는 성스러운 삶에 대한 감각, 「바람벽」(박명희)이 지닌 정통적 기법, 그리고 「염소를 모는 여자」(전경린)가 거의 전면적으로 품고 있는 상상력이 지닌 당당함이었다.

이중에서 우리가 좀더 소중하다고 본 것은 상상력의 당당함 쪽이었다. 문체에서도 구성에서도 삶의 인식에서도 이점이 뚜렷했다.<박완서 김윤식 김우창>

◎심사경위/경력 관계없이 작품성에 주목/작년 7월부터 올 6월까지 발표소설 대상/신진작가 중심 후보작 예심거쳐 10편 경합

올해 제 29회 한국일보 문학상은 작품을 여유있게 천착해서 꼼꼼하게 심사하기 위해 4명의 심사위원이 예심과 본심을 함께 담당하던 것을 예심 3명, 본심 3명으로 이원화했다. 95년 7월부터 96년 6월말까지 월간·계간 등 각종 문예지에 발표됐던 중·단편 소설이 심사의 대상이었다. 그동안 발표된 장편소설도 포함시켰다. 예심은 이남호(고려대 국어교육과) 홍정선(인하대 국문과) 교수와 문학평론가 남진우(문학동네 편집위원)씨가 맡았다.

11월 중순 예심을 시작, 12월10일 심사회의를 열었다. 그 결과 ▲공지영 「모스끄바에는 아무도 없다」(창작과비평, 95년 겨울호) ▲김형경 「세상의 둥근 지붕」(세계의 문학, 96년 여름) ▲박명희 「바람벽」(문학사상 96년 11월) ▲서하진 「조매제」(문학과 사회, 95년 가을) ▲성석제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문학동네, 95년 여름) ▲윤영수 「해묵은 포도주」 ▲이청해 「우리는 가다가 예기치 않은 일을 만난다」(세계의 문학, 95년 겨울) ▲전경린 「염소를 모는 여자」(문학과 사회, 95년 겨울) ▲정 찬 「은빛 동전」(문학동네, 95년 겨울) ▲최인석 「노래에 관하여」(실천문학, 95년 여름) 등 10명의 10개 작품이 후보작으로 본선에 올랐다. 당초 오정희씨의 「구부러진 길 저쪽」 등 12편이 논의의 대상이었으나, 신진 문인에게 기회를 확대한다는 의미에서 중진들의 작품을 제외하고 10편으로 압축했다.

본심은 12월 11일부터 21일까지 이루어졌다. 소설가 박완서씨와 김윤식 서울대 국문과 교수, 김우창 고려대 영문과 교수가 담당했다. 21일 한국일보사 13층 송현클럽에서 본심 심사위원회를 열고 치열한 논의 끝에 전경린씨의 「염소를 모는 여자」를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등단한지 2년이 채 안된 신인이라는 지적도 있었으나, 경력과 관계없이 작품성만을 놓고 평가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권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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