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집결 버스등원… 7분만에 상황 끝/철벽보안·비상연락 군작전 방불/밤 10시부터 통보 “어둠속 특명”/오 부의장 연거푸 의사봉… 11개 법안 일사천리 통과법안처리에 걸린 시간은 불과 7분이었다. 26일 새벽 6시에 시작된 표결절차는 정확히 6시7분에 모두 끝났다. 그러나 이 7분에는 하루 한나절의 치밀한 준비가 있었다. 34시간에 걸친 철벽보안이었다. 24일 밤 기습처리 계획을 확정한 순간부터 26일 새벽 법안통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군작전을 방불했다.
▷기습날치기◁
새벽 6시 정각, 착석과 동시에 날치기가 시작됐다. 오세응 부의장은 본회의 개의를 선언한 뒤 안기부법 개정안을 먼저 상정했다. 오부의장은 21일 지역구 행사에 참석한 뒤 잠적, 집근처 호텔에 은신해 오다가 25일 밤 분당자택에 들러 옷을 갈아입고 의사당에 나왔다.
오부의장은 국회법에 따라 기명과 무기명 표결절차에 대한 찬반여부를 물었다. 모두 부결되자 짧은시간에 해치울 수 있는 표결방법이 도입됐다. 오부의장은 『이의없느냐』고 물었고 의원들은 의석에 앉은채 『없습니다』라는 답변을 되풀이 했다. 오부의장은 연거푸 의사봉을 쳐댔다. 노동법과 안기부법을 포함, 모두 11개 법안이 순식간에 통과됐다.
▷국회 도착◁
새벽 5시 칠흑같은 어둠이 덮인 서울 마포 가든호텔, 염창동 나이아가라호텔과 리버파크호텔, 반포 팔레스호텔앞. 커튼으로 창을 가린 4대의 대형 관광버스가 속속 도착했다. 의사당으로 신한국당 의원들을 실어나를 차량이었다.
5시50분 국회후문에 4대의 버스가 모두 도착했다. 일부 의원들은 택시를 이용했다. 의원들이 대기하는 사이 총무단이 마지막 점검을 했다. 야당의 감시가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 상황이 좋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본회의장 직행이었다. 5시58분 본회의장 입장이 완료됐다. 인원점검이 있었다. 딱 1명이 비었다. 이신범 의원이었다. 이의원은 6시5분께 안기부법 등 일부법안을 처리하고 난 다음 뒤늦게 회의장에 도착해 표결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사전준비◁
성탄전야인 24일 밤 8시 강삼재 사무총장, 이상득 정책위의장, 서청원 총무, 신경식 정무1장관 등 당지도부가 여의도당사 원내총무실에 모였다. 법안처리를 위한 구수회의였다. 몇가지 원칙이 다시 확인됐다.
『법안처리가 내년으로 넘어갈 경우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어차피 협의처리가 불가능하므로 최대한 빠른 시간내에 처리를 강행해야 한다. 가급적 본회의장에서 적법한 절차를 거쳐 처리한다』 성탄절 다음날인 26일이 D데이로 정해졌다. 휴일 다음날이라 감시가 느슨할 것이란 점도 택일의 배경이 됐다. H아워만 빼고 모든 계획이 세워졌다.
구체적 통과방식에 관해서는 여러 안이 검토됐다. 무엇보다 처리시간이 문제였다. 낮시간에 본회의장에서 처리하는 방식, 의원총회장을 이용하는 방식 등은 물리적 충돌을 피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제외됐다. 이에 앞서 이날 하오 1시30분 의원총회에서 서총무는 『어떤 결정이 내려질지 모르니 지방행을 삼가고, 성탄절때 보좌관이나 비서관을 통하지 않고 연락이 닿을 수 있도록 하라』고 미리 당부해 놓았다.
다음날인 25일 낮 12시 63빌딩 일식집에서 총무단 11인 회의가 열렸다. 시간을 결정하면서 엎치락뒤치락이 있었다. 보안문제를 이유로 시간을 앞당기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H아워를 새벽 6시로 정했다. 통상 일과가 시작되는 시간이어서 심리적 부담이 덜하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장소는 본회의장으로 하되, 여의치 않으면 의원총회장이나 국회도서관 대회의실을 이용하기로 했다.
저녁 8시 지방에 내려간 의원들에게 먼저 연락을 해 상경을 명했다. 이어 밤 9시30분 각 상임위위원장과 간사에게 통보가 갔다. 이들이 밤 10시부터 이튿날 상오 1시까지 상임위소속 의원들에게 일일이 개별통지했다. 보좌진과 비서진에는 알리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연락상황을 총괄지휘한 하순봉 수석부총무는 당사 총무실에서 불빛이 새나가지 않도록 블라인드 커튼을 내린채 밤새 확인작업을 했다.
새벽 4시 윤영탁 국회사무총장이 방호원 비상소집령을 내렸다. 5시40분 하부총무가 국민회의 박상천 총무에게 전화를 했으나 통화가 되지 않아 남궁진 수석부총무에게 날치기를 통보했다. 자민련 이정무 총무에게도 연락했다. 민주당 이규정 총무는 지방에 내려가 있어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럴 수 있느냐』는 항의에 『유감이지만 단독처리할 수 밖에 없다』는 말로 짤막한 통화를 끝냈다.<홍희곤 기자>홍희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