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만에 다시 울린 그때 그 감동26일 하오 7시30분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아카데미심포니오케스트라의 송년음악회는 뜻깊은 무대였다. 지휘자 임원식(77)씨와 피아니스트 윤기선(75)씨가 반세기만에 같은 곡으로 다시 만나 감동의 무대를 펼친 것이다. 오케스트라가 뭔지조차 낯설던 광복 이듬해 46년 10월, 윤씨는 당시 하나뿐이던 고려교향악단과 우리나라 최초로 그리그의 피아노협주곡을 협연, 음악사에 한 획을 그었다. 그때의 지휘자가 바로 임씨였다.
그리그의 그곡을 이날 다시 연주한 두 원로의 재회무대는 청중들에게 인생과 예술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새 강산이 다섯번 바뀌어 팔팔하던 20대 두 청년은 80을 바라보는 노예술인이 됐고, 그 무대에 함께 섰던 50여명의 고려교향악단원 중 절반 이상이 세상을 떴다. 그러나 평생 음악 외길을 걸어온 두 사람은 지금도 건강과 정열을 잃지않고 우리나라 음악계의 큰 기둥으로 남아있다.
『최초의 교향악단인데다 협주곡이란 것도 처음 듣는 것이니 참으로 신기할 밖에. 그래도 청중들이 열광적으로 박수를 쳤지요』(임원식), 『당시 연주회장에는 음악을 듣기보다 구경하러 온 사람이 더 많았지요』(윤기선)
양악 초창기 모든 게 열악하던 상황에서 두 사람은 그리그를 시작으로 베토벤, 차이코프스키, 리스트 등의 협주곡을 차례로 협연했다. 「하는 곡마다 초연이던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부터 임씨는 교향악단 운동에, 윤씨는 피아노음악의 선구자로 활동했다. 이들은 정부수립 석달 전인 48년 5월 미국 유학생 1호로 같은 비행기를 타고 도미, 줄리어드에서 공부했다. 나라가 없던 때라 여권 대신 미군정청이 내준 여행증명서를 가지고 뉴욕에 내리자 뉴욕타임스에 「한국서 첫 유학생 도착」이라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귀국 후 임씨는 53년 서울예고를 설립해 75년까지 교장으로 있으면서 숱한 예술인재를 길러냈다. 56년에는 국립교향악단(현 KBS교향악단)을 창설, 초대상임지휘자로 15년간 일하면서 국내 교향악 발전의 주춧돌을 놓았다.
윤씨는 이화여대 음대, 미 하트포드 대학, 하트음대, 연대음대 교수를 지낸 뒤 77년 미국에 정착했다. 그가 광복 전부터 가르쳤던 제자들이 지금은 국내 피아노음악의 대들보가 됐다. 올드팬들은 40∼60년대 무대 위의 신사로 명연주를 들려주던 그의 모습을 기억한다. 93년에는 서울시향과 브람스의 대곡 「피아노협주곡 1번」을 협연했다.
이날밤 청중들은 예술의전당을 나서면서 두 사람이 같이 하는 무대를 앞으로도 여러번 볼 수 있기를 기대하는 듯 했다.<오미환 기자>오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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