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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어디 있어요?”/프란시스코 카란사(한국에 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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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어디 있어요?”/프란시스코 카란사(한국에 살면서)

입력
1996.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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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의 한국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90년대의 프로그램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단연 해외소개 프로의 폭증을 들겠다. 관광지나 기이한 풍물을 소개하는 프로는 물론 퀴즈프로에도 외국문물이 소재로 등장해 안방에 앉아서 세계를 여행하는 기분이 들 정도다. 덕분에 이제는 거리를 활보하는 외국인 누구도 「낯선 사람」대접을 받지 않게 되었다.80년대 초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사람들은 나의 국적을 알아맞추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한국말을 전혀 못하니 외국인은 분명한데 백인도, 그렇다고 흑인도 아니고…. 당시 가장 많이 거명된 나라는 베트남이었다. 베트남전의 기억이 생생했기 때문이리라.

한참의 스무고개 끝에 『페루』라는 이름을 대면 십중팔구 『페루? 어디 있어요?』라는 질문이 뒤따랐다. 남미에 있다는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오는 반응은 『아, 쿠데타가 많은 곳!』이었다. 간혹 스포츠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페루를 축구의 나라로 기억했는데 70년대 말 한국에서 원정경기를 치른 페루 축구팀 덕분이었다. 그러나 90년대 말인 지금, 페루가 어떤 나라이며 무슨 유적지가 있는지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얼마전 알게된 분은 필자의 고향이 페루라고 하자 『잉카의 후손이시군요』라며 반겼다. TV에서 마추픽추 쿠스코 나스카 유적지를 보았다며 현 대통령의 이름, 경제까지도 언급했다. 아마 다시 만나면 투팍 아마루 게릴라들의 일본대사관 인질사건이 화제에 오를 것이다.

외국에 대한 이러한 지식은 세계를 하나로 묶어주는 매스컴의 발달이 가져온 긍정적인 결과이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위험성이 있다. 대중매체는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을 조명하는데 더욱 적극적이어서 각 지역, 혹은 각국에 대한 참된 이해를 그르칠 수 있다는 점이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한국의 발전한 모습 대신에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중남미인들에게 뚜렷이 각인된 것이 좋은 예이다. 특히 지엽적이고 단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제작된 프로는 외국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경향이 있다.

몇달 전 한 프로그램에 등장한 분은 어느 나라를 소개하면서 『GNP가 우리보다 낮은 미개국이며, 외국인 관광객에게 바가지를 씌우니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고 이러한 의견은 소수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에서 이런 사견을 그대로 내보내고, 많은 사람들은 이 의견을 수용한다는 데 있다.

다행히 최근 한국의 각 대학에서는 국제관계 및 지역전문가 양성에 관심을 쏟고 있다. 한국의 위상을 바르게 정립하려면 우선 세계를 제대로 알아야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전문가의 배출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일이다. 다만 이러한 열화(?)같은 관심이 좀 있으면 시들해지는 유행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한국외대 교수·페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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