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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나누는 삶’ 작은 사랑 큰 감동(96 사회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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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나누는 삶’ 작은 사랑 큰 감동(96 사회면:중)

입력
1996.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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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아 입양 업어서 등하교/이호선 교수 시신 해부용 기증/삯바느질 전재산 심장병 돕기/방수현씨 나환자위해 성금/신일룡씨 효박물관 50억 희사비리 살인 강도 사기 강간. 언짢은 일들은 일상이 되어 우리 곁에 머무르고 있다. 이 살벌한 세상을 지난 한해동안 살아갈 수 있게 했던 것은 무엇인가. 잔잔한 미소와 감동의 눈물을 가져다준 아름다운 이야기들 덕분은 아닐까. 미담은 비록 그것이 세상 한 귀퉁이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일지라도 사회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인 것이다. 올 한해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확인시켜 주었던 소중한 얘기들을 모아본다.

어려운 사람이 더욱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은 자선 가운데 가장 값지다. 5월13일 국제키비탄 한국본부가 수여하는 「제19회 장한 장애아 봉사자상」의 수상이 한 주부에 의해 거부됐다. 이유는 간단했다. 왼 손이 한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수상을 거부한 송창옥(47·부산 사하구 괴정4동)씨는 넉넉지 못한 생활에 병석의 시어머니를 부양해야 하는 어려운 처지였다. 그러나 송씨는 79년 생후 4개월된 중증장애아를 입양, 자식처럼 키웠다. 85년부터는 입양한 아이를 하루도 빠짐없이 장애인특수학교에 업어서 등·하교시켜 개근상까지 받게 했다.

1월5일 마산출입국 관리사무소의 한 직원은 불법취업사실이 적발돼 막 중국으로 추방된 재중동포 3명이 남긴 따뜻한 정성에 감동했다. 출국당하는 처지이면서도 『고국에 어려운 이웃이 많은 것을 알게 됐다』며 불우이웃성금 10만원을 주고 간 것이다. 언제 붙잡힐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공사판을 전전하며 마련해 속주머니에 꼬깃꼬깃 간직했다 내놓은 지폐에 담긴 뜻이 한동안 얘깃거리가 됐다.

신체의 일부 또는 전부를 기증하는 지고의 선행을 몸소 실천했던 사람도 적지 않았다. 8월28일 타계한 전 이화여대 의대교수 이호선(비뇨기과·향년 54세)씨는 자신의 시신을 해부·연구용으로 연세대 의대에 기증했다. 이씨는 숨지기 1주일전 전달한 시신기증서를 통해 『해부를 통한 인술의 발전은 궁극적으로 많은 생명을 구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또 3월7일 박모(49·회사원)씨는 신부전증을 앓아온 아내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신장을 받아 완쾌되자 자신도 보은의 장기기증을 하겠다고 밝혔다.

역경을 딛고 소망을 이뤄낸 장애인들의 성공담도 우리를 기쁘게 한다. 선천성 청각장애인인 노재광(20·광주제일고 졸)씨는 수능시험에서 301.1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얻었다. 강사가 가르칠 때의 빠른 입 놀림을 읽지 못해 학원도 다닐 수 없었던 그는 혼자만의 의지와 노력으로 이같은 결실을 일궈냈다. 노씨는 장애인들을 위해 인술을 펴기 위해 의대를 지원했다.

할머니가 자신의 평생을 털어 「손주」들에게 새 삶을 주기도 했다. 윤선옥(78·인천 북구 효성2동)씨는 삯바느질로 모은 1억여원의 재산을 심장병으로 생명이 꺼져가던 어린이 6명의 수술비로 대주었다. 『밤 잠 못자고 번 소중한 돈이지만 생명보다 귀할 수는 없다』 윤씨에게 이번일은 「인간의 도리」였다.

버려진 아이, 그것도 장애아를 데려다 기르고 그 아이를 위해 자신의 미래까지 희생한 주한미군 폴 토마스(39) 소령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쳐주었다. 웨스트 포인트 출신의 엘리트장교인 토마스 소령은 94년 이미 중령진급 대상자에 포함됐다. 그러나 그 해 11월 입양한 한국인 장애어린이 강태직(3)군의 신경장애 치료를 위해 올해 9월초 진급을 포기하고 전역서를 냈다. 그는 신경전문병원이 있는 미국 워싱턴으로 이사갈 예정이다. 『태직을 키우는 일은 신이 내린 나의 임무』라고 말하는 토마스 소령을 보면서 위대한 인간애를 새삼 배우게 된다.

뺑소니 음주운전사고 등으로 대중의 스타들이 적잖이 추락한 올해 올림픽우승 격려금을 나환자 등 불우이웃을 위해 쾌척한 배드민턴선수 방수현(24)씨나 효박물관 건립에 50억원대 땅을 내놓은 영화배우 신일룡(48)씨의 사랑실천은 진정한 스타의 향기를 느끼게 해주었다.<이은호 기자>

◎할아버지·할머니들의 ‘장학’/곰탕집·여관경영 등 평생모은 재산 쾌척/“돈없어 못배우는 일 없게…”/강처여·김경희·인태순씨 등/우리시대 ‘어른’다운 어른

유난히 을씨년스러운 한 해였기에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정감어린 손길은 더욱 따스했다. 과소비와 방종, 부패와 타락이 판치는 세상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평생 모은 재산을 아낌없이 사회에 환원하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11월5일 68세로 세상을 떠난 부산 곰탕집 또순이할머니 강처여(부산 동래구 온천1동 241의 36)씨. 어려웠던 시절을 억척으로 살았고 부족함이 없어진 시기에 모든 것을 사회에 되돌린 강할머니의 일생은 병자년 우리 사회에 던져진 강렬한 화두였다.

30여년간 곰탕집을 경영하며 한푼 두푼 모아 일군 55억원 상당의 전재산을 7월 부산대에 장학기금으로 내놓은 강할머니는 조촐했던 장례식으로 마지막 가는 순간에도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5세때 어머니를 여의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온 그는 『가난 때문에 배우지 못해 한을 품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서울 「상계동의 슈바이처」 김경희(76) 박사 또한 잊을 수 없는 우리들의 할아버지로 각인됐다.

세브란스의전을 졸업하고 84년 서울 상계동에 은명내과를 개원한 그는 89년 7월 전국민의료보험이 실시될 때까지 지역주민들에게 1,000원의 진료비만 받은 「1,000원 개업의」. 사회봉사활동에 젊음을 바친 그는 4월 평생 모은 시가 53억원상당의 부동산을 모교 연세대에 쾌척했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관리자일 뿐 소유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신자인 그가 전재산을 환원하며 남긴 이 말은 세월이 가도 바래지 않을 영원한 명제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5월에는 원로국악인 심소 김천흥(87)씨가 연금 등 5,000만원을 서울대 국악과에 기증했고, 재일동포 조성제(70)씨는 고향마을 경남 함안의 장학기금으로 30억원을 내놓았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막내아들을 잃은 김정숙(74·인천계양구 계산동)씨는 보상금 2억원을 경희대와 서울산업대에 각각 1억원씩 장학금으로 기탁했다.

81세의 산골할머니 정옥순(강원 인제군 월학리)씨는 『공부할 나이에 나처럼 배움의 기회를 놓치는 학생들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논과 밭, 아파트 등 5,000만원 상당의 전재산을 7월 재단법인 인제군장학회에 기탁했다.

지방공무원 출신 오형탁(80·경기 군포시 당정동) 할아버지와 서울 영등포역전에서 여관을 경영하는 인태순(71) 할머니는 10월에 각각 10억원과 1억원을 장학기금으로 지역사회에 내놓았다.

11월에는 학교법인 육하학원 이사장 김종성(91)옹이 자신이 설립한 통일교육장학재단에 80억 전재산을 쏟아 넣었다. 9명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내놓은 장학기금은 모두 232억원. 이들의 「작은 소망」은 배움을 갈망하는 후세들을 통해 「큰 뜻」으로 피어날 것이다.<김상우 기자>

◎올해의 의인/성폭행 막다 희생 최성규씨/시민의식 실종 살신으로 경종

실종된 시민의식에 몸을 던져 경종을 울렸던 의인 최성규씨의 사연은 우리 사회의 아름다움이자 우리 자신의 부끄러움이다. 도덕이 무너져내린 이 사회에 우리는 분노했고, 용기있는 31세 젊은이의 이른 죽음에 우리는 안타까워 했다.

무덥기만 하던 8월10일 밤 10시께. 서울 명동의 한 구두판매업소 매장책임자인 최씨는 승용차를 타고 귀가하다 지하철 2호선 성수역 앞 골목길에서 여대생 이모(21)씨가 치한에게 성폭행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최씨가 차에서 뛰어나왔을 때는 치한이 반항하는 이씨를 칼로 찌른뒤 막 달아나던 참이었다. 「불의를 보고 못 참는」 최씨는 범인을 뒤쫓았다. 그러나 흉기를 든 범인과 격투를 벌이던 최씨는 등산용 칼에 찔려 쓰러졌다.

3개월여전인 4월30일 대낮 시외버스에서 한 여대생이 옆자리의 치한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여대생은 동승한 승객 30여명을 향해 구조를 요청했으나 모두가 모르는 체 했다. 이 사건이 보도되자 모든 「시민」들이 「승객」들을 질타했다. 누가 시민이고 누가 승객인지, 최씨는 죽음으로 해답을 던졌다.

8월14일 서울 광진구청 1층 광장. 최씨의 영결식은 광진구민장으로 치러졌다. 모든 이들의 위로와 자책인양 식장에는 국민포장과 표창장이 가득했다. 최씨는 보건복지부에 의해 의사자로 선정됐다.

졸지에 남편을 잃은 조미숙(30·광진구 중곡1동)씨는 아직도 그 날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전셋집에서 두살배기 딸 예지양을 안고 시어머니 차금진(61)씨와 살고 있다. 「올해의 자랑스런 시민상」 「96 올해의 청년상」 등 그동안 각종 단체에서 준 표창장을 바라볼 때면 남편이 자랑스럽지만 예지가 『아빠, 아빠』를 찾을 때면 가슴이 미어진다.

『더 이상의 의사상자가 나오지 않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조씨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의사상자는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불의와 악이 사라지고 도덕과 시민의식이 회복된 사회는 최씨가 저 세상에서도 간직하고 있을 마지막 꿈인지 모른다.<김관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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