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이 저물고 있다. 올해는 의료선진화를 위한 각종 제도적 장치를 둘러싸고 보건당국과 의료계가 심한 마찰을 빚은 한 해였다. 의대 신·증설에 따른 신경전이 재연됐고, 한약분쟁으로 119명의 한의대생이 제적당하기도 했다. 반면 국내 최초의 폐이식수술 성공, 식품의약품안전본부의 출범 등 성과도 있었다. 「의사가 만드는 건강·의학면」 객원편집위원단이 선정한 96년도 의료계 10대 뉴스를 정리해 본다.◎뇌사·장기이식 합법화
정부는 6월14일 뇌사를 사망으로 인정하고 뇌사자의 장기를 엄격한 법적절차에 따라 적출, 이식할 수 있도록 하는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시안을 마련했다. 내년초 국회 입법과정을 거쳐 98년부터 시행될 시안은 장기제공·이식 희망자를 국가가 설립한 장기이식기관에 등록토록 하고 이 곳을 통하지 않는 장기이식행위는 일절 금지했다. 또 장기매매 및 알선자는 1년이상의 징역 등 형사처벌을 받게 했다.
◎주치의 등록제 공방
정부는 1차진료 기능의 효율화 및 의료전달 체계의 확립 등 다양한 의료제공을 목표로 주치의 등록제 시범사업을 추진 중이나 의료계의 반대로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주치의 등록제는 희망하는 가정이 연간 2만원을 내고 개업의사 한사람을 주치의로 등록하면 평생 그 의사로부터 병력관리 및 1차진료, 방문진료, 2·3차의료기관 예약 및 입원의뢰, 예방접종 등의 서비스를 제공받는 제도이다.
◎태아 성감별 의사 구속
연초부터 태아성감별에 대한 비난여론이 형성됐다. 산부인과 의사들의 무분별한 성감별 행위가 성비 불균형을 가져온 주된 이유로 지적됐기 때문이다. 여아 100명당 남아수를 나타내는 출생 성비는 80년 105.3에서 86년 111.7, 91년 112.5, 94년 115.5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결국 10월1일 나모(49)씨 등 산부인과 의사 4명이 사법사상 처음으로 태아성감별 때문에 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천지산·유전자 치료 파문
「기적의 암치료제」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천지산이 아무런 약효도 없는 것으로 드러나 이 약을 개발, 판매해 온 배일주(35)씨에게 10월1일 유죄가 선고됐다. 배씨는 암환자들에게 천지산 1억4,000만원어치를 판매한 혐의로 체포됐으나 효험을 봤다는 환자들의 탄원으로 불구속기소돼 화제가 됐다. 중앙대병원 문우철 박사팀도 유전자 치료로 말기암 환자 10여명을 치료했다는 임상결과가 보도돼 홍역을 치렀다.
◎의과대학 신·증설 논란
정부는 내년도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올해보다 140명 늘린 3,260명으로 확정했다. 성균관대 의대 포천중문의대 을지의대 등 3개 의대가 신설되고, 2개 대학 20명이 증원됐다. 이는 2000년에는 최소한 4,800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이라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전망을 토대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의료계는 부실한 교육여건 때문에 저질의사가 양산될 가능성이 높다며 크게 반발했다.
◎식품의약품안전본부 출범
4월6일 식품의약품안전본부의 출범으로 식품과 의약품의 안전성 확보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 안전본부는 전국 검역소로의 검역기능과 국립보건원의 일부 기능을 흡수, 식품 약품 의료기기 등에 대한 시험 검정평가 독성연구 등의 사무를 관장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본부의 발족은 세계무역기구(WTO)체제 출범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회원국 진입 시점에서 시의적절한 조치로 풀이된다.
◎한약분쟁 재연
5월15일 한약조제시험의 한의학측 출제위원 9명이 집단퇴장하면서 한약분쟁이 재연됐다. 11개 한의대생 3,900여명은 시험 무효화, 한의약정국 신설 등을 주장하며 수업을 거부, 119명이 제적됐다. 정부는 보건복지부내에 한방정책관을 신설하고 한의대졸업생도 보건소장이나 군의관으로 복무할 수 있게 하는 공중보건의제도 시행방안을 발표, 한약분쟁은 일단 진정국면에 접어들었으나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포괄수가제 도입
백내장 수술 39만원, 맹장수술 70만원. 질병 유형에 따라 표준화한 진료비를 부과하는 포괄수가제(DRG)개념이 도입돼 의료계에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정부는 내년부터 전국 60개 병원에서 포괄수가제를 시범실시할 계획이다. DRG는 질병 종류에 따라 진료비가 미리 결정돼 과잉진료와 투약 등 불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억제하는 장점이 있으나 의료계는 서비스의 공급량이 줄어 의료의 질을 떨어뜨린다며 반대하고 있다.
◎국내 첫 폐이식 수술
그동안 미개척분야로 남아 있던 폐이식 수술이 7월7일 연세대 의대 흉부외과 이두연 교수팀에 의해 성공적으로 이뤄져 국내 장기이식술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번 수술은 지금까지 국내 의료진이 시도한 심장 신장 간 췌장 각막에 이어 6번째 장기이식수술이다. 폐이식 수술은 거부반응, 기관지연결부 파열 등의 부작용 가능성이 높고 이식된 폐의 감염 위험성이 높아 그동안 국내에서는 시도되지 못했다.
◎중소병원 잇단 도산
67년 설립된 서울 을지병원이 적자로 몸살을 앓다가 12월초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95년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15개 병원이 폐업했고, 7개병원의 소유권이 이전됐다. 병상을 축소한 병원도 56개에 이른다. 서울에서만 올해 318개 의원이 문을 닫았다. 의료계는 낮은 의보수가와 대학병원 재벌병원 등 큰 병원만을 선호하는 국민의식이 병·의원 도산의 주범이라며 의보수가 조정 등 제도적 지원책을 요구하고 있다.<고재학 기자>고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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