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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노 재판 공직비리 ‘부끄러운 한해’(96 사회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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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노 재판 공직비리 ‘부끄러운 한해’(96 사회면:상)

입력
1996.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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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건은 그 시대와 사회의 의미를 알려주는 기호이다. 사건과 화제를 담아내는 사회면은 사회의 거울이자 일지이다. 96년 한해 동안 사회면은 무엇을 비추었으며 무엇을 담아냈는가. 끝없는 사건과 숱한 화제, 각박한 세태에서 더욱 소중한 미담, 충격과 비탄을 자아낸 갖가지 죽음들. 상(화제)·중(미담)·하(죽음) 3회에 걸쳐 올해의 사회상을 정리한다.<편집자 주> ◎임진·한탄강 범람 후진국형 인재/서울시내버스 적자조작 파문/‘막가파’‘아가동산’ 사회병리도/중하위직비리 ‘전목일구’로 발전

96년은 사건을 헤치며 달려온 한 해였다.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대형사고는 없었으나 파란과 충격을 전한 사건의 연속이었다.

12·12 및 5·18사건으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과 5·6공 집권세력 14명이 역사 바로세우기의 심판대에 선 이 사건은 한해내내 전 매스컴을 독식했다. 3월11일 첫 재판이 시작돼 16일 항소심 선고까지 마무리됐다. 내년 4월의 대법원 확정판결을 남겨놓고 있다.

7월에는 구멍 뚫린 하늘의 폭우로 한탄강과 임진강이 범람, 경기 파주시, 연천군 일대가 「수몰지구」로 변했고 강원 철원군에서는 산사태가 발생했다. 강릉 앞바다에 좌초한 북한 잠수함이 발견된 9월에는 무장간첩 26명에 대한 추적작업이 49일동안 계속됐다. 공비 사살 13명 자폭 11명 생포 1명 생사불명 1명에 우리 군경 12명 민간인 4명이 희생됐다. 군은 허술한 해안선 경비는 물론 150만명이 투입된 작전마저 혼선을 빚어 국민을 불안케했다. 8월의 연세대 한총련사건은 6,028명이 연행돼 473명이 구속되고 3,366명 불구속, 373명 즉심, 1,816명 훈방이라는 초유의 기록을 남겼다.

과거청산의 구호 속에서 공직자들의 비리는 여전했다. 고위공직자 10명이 구속됐다. 장학노 대통령 제1부속실장과 이양호 국방부장관 등 청와대에서 국방부에 이르기까지 현직 관리들의 부패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또 국민회의 부총재 이용희씨가 서울시교육감 선거후보의 돈을 받아 구속됐다. 이성호 보건복지부장관은 부인 박성애씨가 안경사협회 불법로비를 받았다는 이유로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금융비리도 마찬가지. 이철수(제일은행) 손홍균(서울은행) 은행장이 구속됐다. 93년이후 은행장 14명이 검은돈에 연루돼 옷을 벗었다. 영화계에서도 곽정환 이태원이라는 두 실력자가 탈세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서울시 버스업자들과 공무원이 공모한 사기극은 큰 충격과 분노를 자아냈다. 공무원에게 뇌물을 건넨 업주들은 요금인상으로 300여억원을 횡령했다.

2,000여건이나 적발된 중하위직 공직자의 비리는 「전목일구」의 축재형으로 발전됐음을 보여주었다(전목일구:60년대에는 자신이 4분의 1(전)만 갖던 것이 70년대에 3분의 1(목), 80년대 2분의 1(일)로 확대되었고 90년대에는 혼자 독식하는 형태(구)가 되었다는 의미).

사회병리현상도 두드러졌다. 연쇄납치범이 기승을 부렸고 「막가는 인생들, 막가파」는 「지존파」의 수법을 모방, 가진 자들에게 복수하겠다며 술집 여주인을 생매장했다. 「아가동산」같은 사이비 종교집단도 고개를 들어 혼란한 사회심리를 반영했다. 이와 함께 사회문제화한 재중동포 사기사건은 지금도 아물지 않은 아픔으로 남아 있다.<이태규 기자>

◎21년만에 불러본 “어머니”/이 입양아 출신 여류시인 현영 타라니 가족과 상봉

현영 타라니(26)씨는 꿈에 그리던 혈육을 만난 96년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만날수록 기쁨과 행복이 커져가요』 내달 4일까지 한국에 머물 그는 경기 의왕시 오빠 이표진(30)씨 집에서 어머니 김산옥(54)씨와 함께 지내고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립지만 21년만에 만난 어머니 오빠 등과 꾸리는 가정은 포근하기만 하다.

타라니씨는 이같은 기쁨을 남기고 싶어 이국에서부터 써 온 글을 묶어 문집 「너의 창을 두드리며」(우석출판사간)를 펴냈다. 김홍래(41) 주한이탈리아대사관 공보관이 번역한 이 문집에는 혈육에 대한 그리움과 사모의 정이 넘쳐 흐르고 출신의 불확실함으로 겪은 고통이 배어난다. 타라니씨는 다섯 살 때 미아가 되어 고아원에서 살던 중 76년 4월 홀트재단의 주선으로 이탈리아 주세페 타라니 부부에게 입양됐으며 95년 이탈리아 문단의 명문인 피렌체 문예지 「일 파우노」문학상을 받았다. 혈육을 찾는다는 한국일보의 보도(8월31일자 35면) 덕분에 9월 가족을 20년만에 다시 만났다.

해외입양이 시작된 지 40년이 되는 올해 타라니씨의 얘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던져 주었다.<서사봉 기자>

◎뜬 별과 진 별/이봉주 박찬호 장승수 “스타탄생”/이양호 백원구 손홍균 허재 “추락”

96년 한해도 부침과 영욕의 스토리는 이어졌다.

스포츠만이 빛난 한해. 황영조 선수가 은퇴한 마라톤의 공백은 이봉주 선수가 화려하게 메웠다. 신체적 결함으로 「달리는 종합병원」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그는 96애틀랜타올림픽 은메달에 이어 후쿠오카 국제마라톤에서 우승했다. 한국인으로 미프로야구의 첫 메이저리거가 된 박찬호는 일본으로 진출한 선동렬과 희비의 쌍곡선을 그렸다.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은 15대 국회에 출석 한 번 못한 「원외 의원」이지만 2002년 월드컵을 공동유치한 공로로 차차기 대선주자로까지 거론됐다.

공사장 막노동꾼에서 서울대 인문계열 수석합격자로 변신한 장승수(25)씨.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는 체험적 한 마디는 어려운 공부에 찌든 고교생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동해안에 침투한 북한 잠수함을 최초로 신고했던 택시운전사 이진규씨. 군의 발표에 따라 「군이 발견한 후에」에서 「군과 동시에」 발견한 것으로 되었지만 정부는 24일 그에게 보국훈장삼일장을 수여키로했다.

애써 찾아야 하는 샛별에 비해 「진 별」은 열거하기에도 숨이 차다. 전두환·노태우·최규하 전직대통령들의 얘기는 접어두고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고위공직자의 기사가 연일 신문지면을 채웠다. 뇌물을 챙기기 위해 점심을 세번씩이나 먹은 청와대비서관에서부터 남편 모르게 억대의 뇌물을 받았다는 장관사모님도 있었다. 이종화 공정거래위 독점국장의 수뢰로 막을 연 현직 고위공직자의 부패행진은 장학로 청와대비서관―백원구 증권감독원장―이철수 제일은행장―서울시의 김동훈 교통관리실장―이양호 국방장관―이성호 보건복지부장관의 부인 박성애씨―손홍균 서울은행장 등으로 끝이 없었다.

스타의 추락도 있었다.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의 패장 박종환 감독. 국제대회 한 게임 6실점은 그의 축구인생의 「자살골」로 남을 것 같다. 농구스타 허재와 탤런트 신은경은 무면허음주에다 뺑소니까지 저질러 팬들을 실망시켰다.<이동국 기자>

◎무성한 말 말 말/“독불장군엔 미래 없다”/“공주병환자 빠떼루를”/명예퇴직 충격 “책상 빼”

「독불장군에게는 미래가 없다」 「공주병환자에게 빠떼루 줘야 함다」 「젖소부인 바람났네」 「방 빼」…. 올해에도 수많은 말들이 쏟아졌다.

8월19일 김영삼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의 임기가 많이 남은 상태에서 차기 대통령후보를 논하며 튀는 것은 곤란하다는 의미로 「독불장군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일침했다. 「독불장군」으로 지목됐던 이회창 신한국당 상임고문은 「비민주적 정당에는 미래가 없다」로 응수했고, 자민련에선 「대선후보 많은 정당엔 미래가 없다」고 꼬집었다.

경제불황은 「명퇴(명예퇴직)」와 「방 빼」로 확인됐다. 평생직장으로 알았던 대기업으로부터 시작된 「명퇴」는 을씨년스런 우리 경제를 상징하는 말로 정착했다. 여름의 전세값 폭등을 빗댄 「방 빼」는 직장인들 사이에 유행한 「책상 빼」와 함께 우리의 서러움을 드러낸 말이다.

일본에만 있는 줄 알았던 「이지메(집단 괴롭힘)」가 상륙했고, 단란주점 여주인을 생매장한 폭력조직 「막가는 인생, 막가파」, 신도 살해혐의를 받고 있는 종교집단 「아가야」 등이 유행을 탔다. 12·12재판이 끝나자 「항장은 불살」이라는 말이, 음주운전으로 구속됐다 풀려난 탤런트 신은경사건 이후 「나도 열심히 산다」는 자조의 항변이 생겨났다.

『난 있지, 숲속에서 난장이만 보면 나머지 6명은 어디 갔는지 궁금해』 『이쁜 애라고 돌려서 말하지 말고 「자옥」이라고 콕 찍어서 얘기해』…. 탤런트 김자옥씨가 퍼뜨린 「공주병」시리즈. 청소년들의 지나친 자기애를 꼬집은 이 말은, 중년남녀들에게 인기를 모은 MBC TV드라마 「애인」신드롬과 함께 올해 최대 히트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성인비디오물 제목인 「젖소부인 바람났네」는 「만두부인 속 터졌네」 「자라부인 뒤집어졌네」 등 속편과 아류작을 양산했고, 애틀랜타 올림픽 레슬링경기 해설자의 독특한 발음에서 나온 「빠떼루(파 테르·par terre)」는 「사재기하는 사람, 빠떼루 줘야 함다」 등 잘못한 사람에게 벌을 줘야 한다는 의미로 널리 사용됐다.<김관명 기자>

◎올해의 인물 성덕 바우만/뜨거운 동포애 다시 찾은 생명

백혈병으로 죽음에 직면했던 입양아 출신 미국 공사생도 성덕 바우만(한국명 김성덕)군의 「부활」은 온 국민이 함께 이루어낸 쾌거였다.

지난해 11월20일 성덕 바우만군의 미국 입양기관에서 한국일보사에 성덕군의 딱한 사정을 전하며 한국의 혈육을 찾아달라는 요청이 왔다. 한국일보사는 이를 보도하면서 독자적으로 전국적인 신원확인작업을 벌였고 이복형제와 친어머니를 찾았다. 그러나 성덕군은 이들과 골수유형이 맞지 않았다. 한국인 중에 유전자형이 같은 골수를 찾아 이식하는 방법 뿐이었다.

한국일보는 다시 1월26일자에 「성덕군을 살리기 위해 골수기증자가 필요하다」는 기사를 사회면에 톱기사로 보도했다. 본지의 잇따른 보도는 전국적으로 성덕군 살리기운동과 백혈병환자돕기 캠페인을 일으켰다. 3군 사관학교생도와 전 장병, 학생 근로자 등 각계각층에서 1만명 이상의 자원자가 캠페인에 동참, 골수기증을 위한 채혈에 참여했다.

결국 성덕군은 자원봉사자 중 유일하게 골수유형이 일치한 육군병장 서한국씨로부터 골수를 기증받아 7월5일 미 시애틀 재향군인병원에서 성공리에 수술을 마쳤다. 성덕군의 이야기는 국내언론은 물론 전세계의 전파를 통해 「지구촌의 화제」로 퍼져갔다. 미국의 ABC, CNN 등 방송사와 세계 유수의 통신사들은 한국민의 열기와 성덕군의 치료과정을 생생히 보도했다.

10월 퇴원한 성덕군은 현재 미네소타주 파인시티에 있는 양부모의 집에서 요양중이다. 성덕군은 최근 본지 시애틀지사와의 인터뷰에서 『나의 몸 속에 흐르고 있는 뜨거운 동포애를 느낀다』며 『내년 여름 다시 검진을 받고 9월에 사관학교에 복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성덕 바우만군 사건은 골수기증에 대한 국민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아주는 계기가 됐다. 골수기증이 헌혈처럼 간단하며 기증한 골수는 곧바로 재생돼 건강에 전혀 지장이 없다는 사실을 널리 알린 것이다. 그 덕분에 민간차원의 골수기증운동본부도 창립됐다.<윤순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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