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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다운 결혼식(장명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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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다운 결혼식(장명수 칼럼)

입력
1996.1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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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축의금을 법으로 금지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는 기사를 얼마전 한국일보에서 읽었다. 보건사회연구원이 주최한 「건전 가정의례 정착방안 수립을 위한 공청회」에서 그런 주장이 나왔고 보건복지부는 가정의례 전반에 걸친 법률개정을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지난 11월 도쿄에서 본 한 결혼식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특별한 종교를 갖지않은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신사(일본의 전통적인 신을 모신 집)에서 결혼식을 올리는데 그날의 결혼식과 피로연은 양가가 모두 크리스천이어서 교회에서 열렸다. 직계가족들만 참석한 가운데 결혼식을 마치고 150여명의 하객이 기다리는 피로연장에 나온 신랑 신부와 양가의 부모들은 차례로 인사했다. 신랑은 이렇게 말했다.

『제가 노리코를 처음 만난 것은 10년전 교회 성가대에서 였습니다. 저는 그 순간부터 노리코를 좋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노리코와 결혼하게 되어 너무나 행복합니다』

신랑의 고백은 축하객들을 미소짓게 했다. 신랑 신부의 친구들은 첫눈에 반한 여자와 결혼하게 된 운좋은 신랑에게 요란한 박수를 보냈다. 다음에 신랑의 아버지가 인사하러 나왔는데 나는 그가 매우 젊게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곧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신랑 이치로는 28세이고, 제가 결혼할 때 제 나이도 28세였습니다. 그때 이치로는 11세였고, 그의 동생은 7세였습니다. 우리가족은 서로 사랑했으나 어려운 시간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치로는 며칠전 저에게 결혼을 계기로 자신의 성인 야마다(산전)를 떠나 저의 성인 스즈키(영목)를 쓰기로 신부와 함께 결정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더 기쁩니다』

그의 인사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28세 때 두 아이를 가진 여자와 결혼했고 17년만에 마침내 같은 성을 쓰는 한 가족이 되어 아들의 결혼식을 치르게 됐다는 그의 고백은 가슴을 때렸다. 여기저기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는 사람들이 보였다. 결혼을 가장 결혼답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평범한 사실을 일깨워 준 감동적인 결혼식이었다.

그 결혼식은 매우 특수한 경우라고 하겠지만 보편적인 일본 결혼식의 좋은 점들도 눈에 띄었다. 가까운 사람들만 참석한 따뜻한 피로연이 있었기에 신랑과 신랑아버지의 그같은 고백이 가능했다는 사실도 발견하게 된다.

일본의 결혼문화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결혼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가족행사라는 인식이 철저하다는 점이다. 결혼식은 양가의 직계가족만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로 치르고 곧 이어 열리는 피로연에서 결혼식을 잘 치렀다고 알리는데 피로연에 참석하는 사람들도 제한되어 있다. 누구에게 청첩장을 보낼 것인지 깊이 생각하고 좌석배치까지 미리 정하기 때문에 초청이 없으면 가까운 친척이라도 가지 않는다. 또 청첩장을 받은 사람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한 반드시 참석하여 끝까지 행사를 지켜보는 것이 예의다.

초청대상을 제한하는 것은 중요한 행사를 중요한 사람들과 함께 치르겠다는 생각 때문이지만, 청첩장이 상대에게 경제적·시간적으로 부담을 주게 된다는 이유도 크다. 일본의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가르치는 것인데, 결혼 풍습에서도 그것이 잘 나타나 있다. 중산층 가정의 경우 양가의 초청자는 대개 150명내지 200명 정도이고, 수백명을 초청하는 요란한 결혼은 인기 연예인과 운동선수들이나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법 제정이 아니라 마비된 부끄러움을 되찾는 것이다. 요란한 결혼식은 자랑이 아니라 수치라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 결혼 청첩장을 상품광고 전단처럼 뿌리고, 뇌물성 축의금을 긁어모아 한 수입 잡고, 축하객의 규모로 자신의 세를 과시하려는 풍조가 얼마나 천박한 것인지 깨달아야 한다. 소위 지도층 인사들이 그런 결혼식을 부끄러워하지 않는한 축의금 금지 입법은 아무런 효과도 거두지 못하고, 상부상조가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에게만 타격을 줄 가능성이 높다.

좋은 일, 궂은 일을 서로 돕던 우리의 미풍양속을 앞장서 짓밟은 것은 지도층 인사들이다. 그들의 천박함을 꾸짖는 운동이 법 개정보다 앞서야 한다.<이사대우 편집위원·도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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