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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잔치’ 김정산 ‘화엄의 나날’(소설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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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희 ‘잔치’ 김정산 ‘화엄의 나날’(소설평)

입력
1996.1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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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통해 깨닫는 생의 의미한국사를 연구하는 학자와 소설가라는 양립하기 힘든 두 가지 길을 동시에 개척하면서 모두 뛰어난 업적을 쌓아온 이균영씨가 몇주전 4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누구의 죽음인들 안타깝고 슬프지 않으랴마는 이균영의 죽음은 특히 그랬다.

근 10년동안 국사학연구에 집중하느라 소설창작을 거의 중단하다시피 했던 이균영이 그 방면에서 마침내 발군의 성과를 이룩해내고 나서 다소 마음의 여유를 얻어 창작을 재개한 것이 바로 지난해의 일이었다. 많은 문학인들은 이균영의 재출발을 진심으로 기뻐하며 그의 미래를 주목해왔던 것인데, 바로 이 시점에서 천만 뜻밖에도 죽음이 그를 덮친 것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중앙선을 넘어온 승용차가 택시를 들이받았다. 얼마나 허망한 죽음인가. 그의 죽음을 생각하고 슬픔에 잠긴 마음으로 「소설과 사상」 겨울호를 넘기다 보니, 눈에 확 들어오는 소설이 두편 있었다. 윤영희의 단편 「잔치」와 김정산의 단편 「화엄의 나날」이 그것이었다.

「잔치」는 친구네 집에서 열리는 잔치에 초대받고 가벼운 마음으로 승용차를 몰고 길을 나섰던 젊은 부부가 도중에 길을 잘못 들고, 고장까지 나는 바람에 겪은 이야기이다. 「죽을 고비를 겨우 넘겼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라고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고생을 했다. 이러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자못 불편한 충격 속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표면상 제법 안정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도시의 일상적인 생활공간 아래 사실은 얼마나 많은 지뢰들이 묻혀 있는가를 섬뜩하게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화엄의…」는 다분히 불교적인 인연설에 바탕을 둔 의미심장한 생사관을 인상깊게 부각시킨 작품이다. 많은 사람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서구적 근대소설의 양식 및 정신의 보편성」이라는 명제에 대해 날카로운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만 하지만, 지인의 죽음을 대하고 새삼 인생의 의미를 자문하는 사람에게 이 작품이 뜻깊은 시사를 제공한다는 점도 강조될 필요가 있다. 작가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이동하 문학평론가·서울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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