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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로… 신부로…/파리외방전교회 임경명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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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로… 신부로…/파리외방전교회 임경명 신부

입력
1996.1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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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지도의 ‘작은 예수’/1주일에 3일 막노동/나머지는 대학강의·사목/강사료 200만원보다 일당 3만여원이 더 소중한 벽안의 사제가/우리사회 ‘달동네’서 실천하는 ‘낮은데로 임하소서’『만약 오늘 예수가 이 땅에 재림한다면 어디로 올 것인가』 난지도 아니면, 미아리 달동네 한 구석이 아닐까.

「임씨」는 그렇게 생각한다.

「임씨」. 그는 「신부님」이다. 그러나 이렇게 불리는 것이 좋다. 한국생활 23년째. 이 벽안의 사제가 일하는 곳은 성당이 아니라 공장이다. 지금은 공장이 화전으로 옮겨갔지만 그는 「난지도 사람」이다.

임경명(52·본명 엠마누엘 케르모알) 신부는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으로 74년 한국에 파송됐다. 그러나 그는 사제복보다 작업복이 더 잘 어울린다.

임신부는 누구보다도 바쁘다. 화·목·토 3일은 플라스틱 재활용공장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꼬박 10시간동안 재생 플라스틱을 쪼개고, 물로 씻어 포장하는 작업을 한다. 또 나머지 이틀간은 건국대 불문학과 객원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친다. 틈틈이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모임에 나간다.

오십줄을 넘은 그가 하루종일 허리를 구부린 채 보통 30∼40㎏에 이르는 물에 젖은 플라스틱을 옮기며 흘리는 땀의 댓가는 일당 3만5,000원. 반면 건국대에서 받는 월급은 200여만원. 하지만 그에게는 「신부님 귀하」라는 꼬깃꼬깃한 봉투에 담긴 일당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그렇다고 공장에서 사목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만약 제가 공장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어떻고 저떻고…」라고 떠들었다면 벌써 쫓겨났을 것』이라며 웃는다. 그냥 공장에서 셔츠바람으로 일하다 『어이 박씨, 소주나 한 잔 걸칠까』라고 떠들며 동료들과 지내는 것이 좋을 뿐이다. 그것은 노동의 신성함과 「섬김과 나눔의 정신」을 생활로 구현하려는 사제로서의 믿음 때문이다.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는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가난하고 고통받는 자들과 아픔을 나누고,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이 신부의 할 일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임신부의 일터가 공장이 된 것은 93년초 우연히 「난지도 사람들」을 만나면서. 노동사목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예수 작은자매회」모임을 통해 난지도 플라스틱 재활용공장에 일자리를 얻었다. 처음에는 『신부가 이런데 나온다고. 며칠 있다 가겠지…』라는 핀잔을 들었다. 하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묵묵하게 공장에 나왔고, 4년이 다 돼가는 지금은 공장주인 신회장과 박씨 아줌마를 빼고는 제일 「고참」이다.

인간이나 쓰레기나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세상의 끝」 난지도.

그는 이 곳에서 가장 친한 친구 「형씨」를 만났다. 전라도 출신의 형씨는 부산의 한 공장에서 프레스에 왼쪽 손목을 빼앗기고 92년 난지도로 들어왔다. 외국인 신부와 불구의 막노동꾼. 처음에는 서먹서먹했지만, 두 사람은 재활용공장에서 한 조로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제와 다름 없는 사이가 됐다.

『난지도는 「정직한 땅」이죠.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고. 또 먼지는 얼마나 많은지. 하지만 그 곳에는 「정직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아니라면, 도저히 견뎌낼 수 없었겠죠. 툭하면 비좁은 형씨 집에서 염치 없이 끼어자는 「못할 짓」도 많이 했습니다』 불교 신자인 형씨는 신부를 친구로 둔 「죄」로 아무리 바빠도 일요일에는 경기 광탄의 「시몬의 집」에서 결핵환자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한다.

임신부의 고향은 프랑스 북서부 브레타뉴지방의 작은 마을. 가난한 소작농의 7남매 중 셋째인 소년 케르모알은 어릴 때부터 말이 없었지만, 힘만은 장사였다. 대부분 주민들이 파리로 나가 노동자로 일하던 고향땅에서 가난에서 벗어나는 길은 군인 아니면, 사제가 되는 것 밖에 없었다. 7세 때부터 다른 집의 허드렛 일을 해야만 했던 소년 케르모알도 신부를 꿈꾸었다. 12세 때 집을 나와 신학교에 들어갔고, 이후 10년간 사제교육을 받았다.

74년 사제서품을 받았고 같은해 한국으로 파송됐다. 그동안 군포와 서울 불광동 금호 미아성당 등에서 보좌·주임신부를 맡았고 85년부터 노동사목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다. 『힘들고 지루한 노동일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잔뼈가 굵어서 별로 힘든 줄 모르죠』

그의 하루도 「노동」처럼 힘들고 단조롭다. 매일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기도, 묵상 등을 하고 6시에 집을 나선다. 월곡동 성가복지병원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공장이나 학교로 간다. 간혹 노동사목위원회 산하 청년회 모임에 나가거나 「난지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고작이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지난 21일에도 그는 공장으로 출근했다. 공장은 올 초 정착촌 건설 문제로 난지도에서 고양시 인근 화전으로 옮겨갔다. 손이 터지는 매서운 날씨였지만, 플라스틱 조각을 담아놓은 자루를 트럭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느라 그의 머리에서는 모락모락 김이 났다. 간혹 미소를 짓는 것 말고는 무거운 자루를 조용하게 들고 뛰는 그는 영락없는 노동자의 모습이었다.

『말이 별로 없는 양반이죠. 살아오면서 「믿는 사람」이 오히려 보통 사람보다 나쁜 짓 하는 것을 많이 보았는데, 신부님을 보니 안 그렇더군요. 아마 버는 돈 대부분을 「엉뚱하게」 쓰고 있을 겁니다』 4년간 함께 일해온 동료 박씨 아줌마의 말이다. 돈의 쓰임새에 대해 그는 『혼자 사는 사람이 어디 돈 쓸 데가 있나요…』라고만 대답했다.

오히려 그는 공장 마당에 가득 쌓여있는 자루들을 가리키며 『요즘 불황으로 물건이 안 나가는 바람에 아무리 몸이 아파도 이를 악물며 공장에 나오던 동료들이 하나 둘 일터를 떠나가는 게 걱정입니다』라고 말했다.<박천호 기자>

◎한국의 외국인 사제들/공장·빈민촌 등서 ‘사랑실천’/165년전 첫발… 프랑스·아일랜드 등 국적 다양

한국 사람보다 한국 말을 더 잘하는 사람들. 한국 사람보다 더 한국 음식을 즐기고, 이제는 꿈도 한국 말로 꾼다는 사람들. 한국에서 외방전교활동을 하는 외국인 사제들이 바로 그들이다.

외방전교란 가톨릭에서 자신이 태어난 곳이 아닌 타국에 파견되어 사목활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이들 중에는 한국에서 산 지가 30∼40년씩 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성골롬반외방선교회의 조 필리프(81) 신부는 그 중 가장 고참격. 1940년 11월에 한국에 파견되어 일제의 몰락과 6·25전쟁을 겪었고, 현역에서 은퇴한 후에도 모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현재 강원도 인제에서 피정집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가톨릭 단체 중 가장 대표적인 곳은 성골롬반외방선교회말고도 메리놀외방전교회, 파리외방전교회 등이 있다. 서울 성북동에 있는 파리외방전교회 한국지부는 설립된 지 165년, 메리놀외방전교회가 70여 년, 성골롬반외방전교회가 63년이다. 그야말로 한국 가톨릭의 역사뿐만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와 고락을 함께 해온 셈이다.

국적도 다양하다. 성골롬반선교회는 주로 아일랜드계가 많고, 미국인, 뉴질랜드인도 있다. 현재 활동중인 외국인 신부는 모두 50여 명. 한국 최초의 외방선교단체인 파리외방전교회는 전원 프랑스인들로 18명 정도가 나와 있다.

이들은 본당사목, 노동사목, 빈민사목 등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성당에서 예배를 집전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병원, 고아원, 양로원 설립 및 봉사활동은 「공통과목」이고, 공장, 빈민촌 등에서 「몸」으로 선교·봉사활동을 하는 이들도 많다. 「낮은 데로 임하라」는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선교·봉사활동의 방향과 성격도 많이 바뀌어 단순 구호나 시혜의 수준을 벗어난 지 오래다. 멀리 이방의 땅에 부임하여 30∼40년씩 살아오면서 마늘 냄새에 익숙해지고, 막걸리의 걸쭉한 맛을 아는 사람들. 외국인 사제들은 더 이상 벽안의 이방인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가 할 일을 함께 또는 대신 하는 사람들이다.<황동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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