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는 때. 좋은 글귀를 적어 친지들에게 새해 안부 전하려 할 때마다 무슨 좋은 말이 없을까 싶어 여러 궁리를 해보지만,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세상에 회자되다 보면 본래 뜻과는 관계없이 말의 행색이 곧 남루해지고 마니, 그 일이 여간 어렵지 않다.틈나는대로 이런 저런 책을 뒤적이는데 <하늘이 복 가지고 값을 보고 주시나니 값이 아니라 덕 닦기가 값이오니 작은 큰 덕의 덕대로 복이로세 자네들 받으려거든 닦기를 힘 쓰시소> 라는 글이 마음을 움직인다. 제자들을 여럿 둔 스승이 새해 인사차 온 제자들에게 주는 「한 말씀」같기도 하고, 아들 며느리 일가 친척을 거느린 가장의 「한 말씀」같기도 한 이 글귀는, 자칫 훈시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끝에 「힘 쓰시소」라고 맺음으로써 「일장훈시」가 아닌 「따뜻한 권유」로 다가온다. 하늘이>
이 글을 지은 신헌조(1752∼1807)라는 분이 누구였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알 수 없다. 꽤 두꺼운 역사사전을 살펴보아도 그의 이름이 눈에 띄지 않는 것으로 보아 생전에 큰 명예를 누린 분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옛 노래책에 여러편 전하는 이 분의 글들은 모두 명랑한 웃음과 따뜻함을 담고 있어 「복 받으려거든 덕을 쌓으라」는 글귀도 누구 앞에서 거드름이나 피우려고 지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말은 재주가 있으면 덕이 부족하기 쉽다는 뜻의 「재승덕박」이라는 말처럼, 재주있는 이들을 괜스레 주눅들게 하지도 않고 모든 이로 하여금 스스로 복을 짓도록 권유하고 있어 더욱더 구수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 글이 아무리 좋은 뜻을 담고 있다고 해도, 아직 젊은 내가 누구에게 이런 말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혹시 말끝마다 「나는 ○○복이 없다」거니, 「나는 본래 운이 없는 사람이야」라는 말로 매사를 자탄하는 이가 있다면 『신헌조라는 분이 그러는데…』라며 슬그머니 말머리를 꺼내보거나, 그것도 안된다면 이런 말을 해도 흉되지 않을 나이를 기다리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을 것 같다. 다만 나를 아껴주시는 어느 어른이 이 글귀를 눈여겨 보셨다가 새해 덕담으로 들려주신다면 얼마나 기쁠까 싶은 마음을 가져볼 뿐이다.<국립국악원 학예연구관>국립국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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