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은 ‘공개’ 내용은 ‘밀실’/인맥·학연·청탁 동원 ‘내 사람 심기’ 성행/자격미달자가 강단 서고 무보수·저임금 강요…/전임교수 확보율 높이려 유령교수 만들기도97학년도 신규 교수임용 시즌을 맞아 이 대학 저 대학을 분주하게 돌아 다니는 「예비교수」들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대학마다 『21세기를 함께 열어 갈 유능한 석학을 모십니다』 라고 교수초빙 공고를 내놓고 있지만 실력만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언제부터인지 만연한 임용비리의 제물이 될 수도 있다는 불길한 생각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수사회가 교수임용을 둘러싼 비리와 잡음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실력에 따른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보다는 인맥과 학맥 청탁 등에 의한 노골적인 「내 사람 심기」가 성행하고 있다. 선배교수가 후배에게 교수임용 대가로 금품을 받은 뒤 추가로 선물과 문안인사를 요구하고 거절당하자 폭언과 폭행을 한 어처구니 없는 일조차 있다. 임용을 조건으로 무급이나 상상 이하의 저임금을 강요받기도 한다.
총장이나 재단의 전횡, 정·재계 유력인사의 부당한 개입과 같은 비리도 여전하다. 임용절차가 끝나자 마자 『억대의 금품이 오갔다』는 뒷말이 무성하게 나돌아 「교수직 매매」의혹을 강하게 받는 대학도 적지 않다. 심지어 우수한 인재가 같은 과에 후배교수로 들어오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갖가지 수단을 동원해 임용을 막는 경우도 있다. 『사회의 거울이 돼야 할 교수사회가 추잡한 「삼류 정치판」을 닮아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 온다.
「교수 공정임용을 위한 모임(교공임)」이 지난 13일 감사원에 제출한 「대학교수 임용 부조리실태 및 방지대책 보고서」에 따르면 국·공립대와 사립대, 명문대와 비명문대 가릴 것 없이 전국의 거의 모든 대학에 크고 작은 임용비리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비리 유형도 더욱 다양해지고 날로 수법이 교묘해지고 있다.
이 보고서가 지적한 교수임용 비리는 상상을 초월한다. 임용 직전에 특정인에 맞춰 심사기준을 마련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심사위원 또는 인사위원 선정을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게 하는 방법도 동원됐다.
채용공고시 특정인만 응모할 수 있도록 전공이나 조건을 지정하거나 전공 부적격자인 특정인도 응모할 수 있도록 너무 광범위하게 지정하기도 한다. 특정인의 학위취득이 예정보다 늦어질 경우 신규채용 공고를 형식적으로 내놓고 응모자들에게 「분야·전공이 맞지 않는다」 「자격미달이다」 「인화에 문제가 있다」는 등의 핑계를 대면서 특정인이 학위를 딸때까지 기다리는 경우도 보고됐다.
최고의 지성인 집단인 교수사회에서 채용비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왜일까. K대학의 K교수는 이렇게 진단했다. 『교수시장의 유통구조가 폐쇄적인 것이 주된 원인입니다. 형식만 갖출 뿐 실제로는 밀실에서 사람을 미리 정해 놓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문제해결의 주체로 나서야 할 교수들마저 인맥과 파벌을 형성해 유능한 교수의 임용을 봉쇄하는 행동까지 서슴지 않고 있어요』
구체적인 임용비리 몇가지를 살펴 보자. 지방의 C대학은 학과 교수들의 서류심사에서 1순위를 차지한 후보가 총장 부총장 등 보직교수들의 면접단계에서 탈락하고 의외의 후보가 선발돼 대학당국과 학과교수들의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이 대학의 모교수는 이렇게 지적했다. 『교수채용시 학과심사는 학력과 경력, 연구실적물 점수가 300점, 학과 공개강의 점수가 100점으로 여기서 임의로 평가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어요. 반면 총장 부총장 교무처장 단과대학장 등 4명의 면접점수가 전체배점의 50%인 400점이나 돼요. 학과 교수들의 서류 및 공개강의 심사는 면접에 비해 점수차가 작아 늘 학교당국의 평가가 임용의 관건이 될 수 밖에 없지요』
실제로 이 대학에서는 지난해 22개 학과 24명의 교수를 채용할 때 9개학과 9명이 학력 경력 연구실적물 공개강의 등 전문적 자질평가 부문에서는 1위판정을 받았으나 면접을 거치면서 탈락해 불공정 임용 의혹을 낳았다. 모학과의 경우 학과평가시 300.08점으로 3위를 차지했던 L씨가 면점에서 351점을 얻어 학과평가에서 1위(322.50점)였던 다른 L씨를 제치고 채용됐다. 불합격한 L씨의 면접점수는 303점이었다. 다른 8개학과도 마찬가지였다. 이와함께 학과교수의 서류심사 과정에서 전공불일치 판정을 받거나 자격미달의 부적격 판정을 받은 후보를 교수로 임용한 의혹도 제기됐다.
대학이 조직적으로 임용비리를 저지르기도 한다. 교수확보율을 높이기 위해 교수자격이 없는 사무직원이나 이사장 및 총·학장의 친인척을 전임교수로 임용한 것처럼 서류를 조작하거나 아예 전임교수 확보율을 허위로 보고하는 것이다. K신학대의 경우 K씨를 「대우전임교수」와 같은 「유령직」에 채용한 뒤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슬그머니 정식교수로 둔갑시켰다.
예·체능계 교수 임용에서는 발표회나 연주회를 갖지도 않고 포스터나 안내책자 등만 낸 뒤 이를 「연구업적」으로 제출해 인정받기도 한다. 지방 C대학 음악교육과의 L교수가 이런 식으로 채용됐다는 의혹이 있다. 응모자가 친인척 등을 통해 뇌물을 주고 임용된 경우, 뇌물을 준 사람만 처벌되고 응모자 본인은 교수로서 강단에 계속 서고 있는 사례도 있다.
본교나 특정대학·학과 출신자의 채용을 선호하는 경향도 적잖은 문제를 낳고 있다. 창의적인 연구활동을 가로막을 뿐 아니라 학문활동에 필요한 지적 자극을 제약함으로써 대학의 질적 발전을 해칠 가능성이 크다고 양심적인 교수들은 입을 모은다. 「출신학교가 어디냐」는 것은 학문적 능력을 따지는 잣대가 되기 보다는 학벌을 통한 편가르기와 파벌만들기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이같은 임용비리가 불거져 나오면서 각 대학은 홍역을 치르고 있다. 학생들은 수업을 거부하거나 삭발과 단식에 들어가고 학과교수들까지 농성에 참여하거나 아예 법정투쟁에 나서고 있다. 대다수 교수들은 『교수 임용비리는 수업손실 등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교수사회의 최대 당면과제』라며 『그런데도 교육관계법은 일선대학의 행정과 동떨어져 있어 제기능을 상실했고 교육행정 당국은 임용비리의 심각성을 제대로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김성호 기자>김성호>
◎공부 안하는 교수 많다/제자들이 쓴 논문에 이름만 ‘걸치기’/다른 학자 논문 발췌 ‘짜깁기’/한번썼던 논문 거듭해서 발표 ‘겹치기’
교수는 대학의 중심기능인 연구활동과 교육의 주체인 「대학의 꽃」이다. 그러나 교수라는 직함 뿐 연구와는 거리가 먼 교수들이 의외로 많다. 연구실적을 부풀리는 것은 물론이고 연구논문 표절 등 학자적 양심을 팽개치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교수들의 연구실적 부풀리기 수법은 다양하다. 제자들이 쓴 논문에 이름만 다는 「걸치기」, 제자나 다른 학자의 논문을 발췌해 그럴듯한 새 논문으로 내놓는 「짜깁기」, 한번 쓴 논문을 거듭 발표하는 「겹치기」, 자신이 쓴 논문의 일부를 발췌해 발표하는 「쪼개기」 등이다.
지난해 경상대 모교수의 경우 박사과정에서 다른 학자와 함께 쓴 논문 3편을 합해 박사학위를 받은 뒤 부교수 정교수 승진때 이 논문을 다시 연구실적물로 제출한 사실이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났다.
심지어 교내 부설연구소의 연구비를 따내기 위해 동료교수의 연구계획서를 베껴 제출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9월 연세대 부설 연구소인 가정간호연구소에서 연구비를 지급키로 하고 연구계획서를 모집할 당시 간호대학 L교수는 같은 대학 J교수가 낸 연구계획서를 제목만 바꿔 그대로 제출했다. 연구대상은 달랐지만 연구목적 및 필요성, 연구내용과 방법, 기대효과와 활용방안 등이 토씨 몇 개를 제외하고는 똑같았다. 심지어 참고 문헌마저 같았다.
학술진흥재단이나 학교측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아 놓고 제자들의 논문을 짜깁기하거나 실적을 내지 못해 연구비를 반납하는 사례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국감에서는 충남대 김모교수 등 3명이 학술진흥재단으로부터 1,780만원의 연구조성비를 지원받은 뒤 제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발췌. 편집해 연구보고서를 제출했다가 연구비를 회수당한 일도 있었다. 서울시립대와 전남대 교수 2명도 교내 자체 학술연구비를 지원받은 뒤 제자의 석·박사 학위 논문을 요약, 제출했다가 적발돼 경고조치 등을 받았다. 학술진흥재단측은 『94년 17건, 95년 14건의 연구비 반납사례가 있었다』고 밝혔다.
국내 교수들의 연구결과물인 학술논문 발표도 저조한 수준이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국민회의 설훈 의원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연평균 교수 1인당 국내 논문 발표수가 1편에도 못미치는 대학이 4년제 대학 100개 가운데 22개에 달했다. 100개 대학에서 1년 평균 교수 1인이 발표한 국내 논문은 1.93편이었는데 대학교육협의회의 평가기준에 의하면 5등급(최고 5, 최하 1)중 4등급(1.5∼2.1편)으로 상위등급에 속했다.
그러나 연구의 질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연구의 질은 해외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수로 추정할 수 있는데 95년 우리나라 대학교수 전체의 해외논문 발표편수는 8,052.6편으로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3개 해외학술지에 게재한 논문수 1만 289편의 78.3%에 지나지 않았다. 또 93년 도쿄(동경)대 교수들의 해외논문 9,675편의 83.4%에 불과했다.<이진동 기자>이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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