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 이목집중 첫 목표 성공 판단한듯/최소 인질만 확보·국민향한 선전효과 노려페루 리마의 일본대사관저 인질사태는 22일 밤(현지시간) 「투팍 아마루 혁명운동(MRTA)」게릴라들이 225명이라는 대규모 인질 석방을 전격 연출하면서 사태발생 6일만에 협상무드로 급전됐다.
이날의 대규모 석방은 일단 페루정부와 게릴라 양측 모두에게 협상을 통한 사태해결의 여건을 조성시킨 것으로 분석된다. 그동안 강경입장을 강조해온 페루정부가 하루아침에 태도를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무력진압이라는 명분이 크게 퇴색할 수 밖에 없게 됐다.
물론 양측은 현재까지 상대방의 양보를 먼저 요구하며 맞서고 있다. 알베르토 후지모리 페루대통령은 전날 사건발생후 최초로 밝힌 정부입장을 통해 게릴라측이 무기를 버리고 투항할 것을 촉구한 뒤 이 조건이 충족될 경우 무력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또한 게릴라측은 이날 석방과 관련한 성명을 통해 후지모리 대통령이 제시한 투항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양측이 서로의 성명에서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희망한다는 전제를 앞부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대목이 새삼 중요하게 됐다. 대규모 인질석방이라는 새로운 상황을 맞았기 때문이다. 석방과 관련된 막후협상 과정은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다만 게릴라들로서는 여러측면에서 현 단계를 협상국면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던 것으로 여겨진다.
우선 이번 인질극의 정치적 목표가 상당부분 달성됐다는 판단을 했을 것으로 보는 분석이 그 첫번째다. 그들로서는 이번 사태를 통해 국제사회의 이목을 충분히 집중시킬 수 있었고 이는 페루정부의 게릴라 소탕정책으로 침체일로에 있던 조직의 재건을 과시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300명이 넘는 대규모 인질을 장기간 억류·관리하기에는 물리적 기술적으로 한계상황에 이르렀다는 현실적 여건을 들 수 있다. 관저내부에는 현재 단전 단수는 물론 통신까지 두절된 상태이기 때문에 특히 야간에는 수백명의 인질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협상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질만을 확보함으로써 다음 단계의 행보를 가볍게 할 전략적 필요가 있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세계의 이목과 페루국민을 향한 선전적 의도도 적지 않게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다른 남미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페루 역시 가톨릭이 국교이다시피 해 성탄절은 아주 의미깊은 날이다. 따라서 성탄절이 임박한 시기에 대규모 인질들을 풀은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규모 인질석방을 계기로 사태가 협상분위기로 전환됐다고 해서 궁극적 해결이 같은 속도와 수순으로 이루어 지리라는 전망은 아직 성급하다. 80년 2월 콜롬비아주재 도미니카대사관의 인질사태가 60여일이나 끌었던 것처럼 이번 사태역시 장기화할 소지가 다분하다.<리마=조재용 특파원>리마=조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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