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관적 경기전망에 대선 겹쳐 정책 제약/경제원리대로 풀어가는 슬기를우울한 겨울이 깊어가고 있다. 작년 이때쯤만 해도 96년 경제운영의 최대 과제가 연착륙에 있다는 낙관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어려운 상황은 내년 정책선택의 폭을 크게 제약하고 있다. 대선이라는 정치일정까지 겹쳐 경제전망은 한층 불투명하다.
거의 모든 예측이 성장, 물가 및 국제수지면에서 비관적으로 흐르고 있다. 성급한 일부 사람들은 내년에 스태그플레이션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점치고 있다. 전 산업의 설비투자 증가율은 1%내외로 하락하는 한편 경상수지 적자 규모는 금년(약 220억달러) 수준에서 크게 개선되기 어려울 것 같다. 이에 따라 이미 1,000억달러를 넘어선 누적 외채는 천정부지로 불어나게 된다.
되풀이되는 얘기지만 한국경제는 아직도 높은 인플레이션과 국제수지 불균형의 습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취약성을 안고 있다. 해묵은 고비용―저효율의 문제도 거시적으로는 다 여기에 기인하고 있다. 다소의 조정비용을 감수하더라도 97년에는 경제안정과 함께 국제수지 개선에 확고한 정책기조가 두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계기로 점차 경제체질을 바꾸려는 결단이 없이는 지속적 성장의 기반을 확립해 나갈 수 없다고 믿는다.
내년 1·4분기의 급격한 경기 위축을 우려하여 이미 재정 조기집행을 비롯한 경기 진작책을 채택하자는 견해가 대두되고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논의 그 자체는 정치적인 고려와 무관한 것 같지 않다. 그러나 금년 경기위축의 주요인이 반도체 부문 등에 대한 빗나간 수출예측에 있었으며 내수부진에 있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한편 원화가치 하락에 따른 수입가격 상승이나 부동산 및 원자재 가격의 불안과 같은 물가상승 요인이 계속 위협을 가하고 있다. 또 임금동결이라는 비장의 수단이 예고된 이상 인플레이션 압력은 정부의 소득정책에 대한 불신을 가져오고 경제불안의 화근이 될 수 있다. 나아가 지속적인 경상수지 적자와 외채의 누적이 이제 위험수위에 도달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한국 수출산업이 당면한 딜레마는 한마디로 아직껏 내세울만한 전문화 부문이 없다는데 있다.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연구개발(R&D)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94년 기준)도 한국의 경우 2.6%로서 일본(9.3) 프랑스(7.6) 독일(7.5) 및 미국(3.3)에 비해 무척 낮다. 심지어 주력 수출상품으로 알려진 전자, 기계나 반도체에서도 국산화율은 아직 크게 미흡하다.
그간 산업구조 조정을 추진해 오는 과정에서 중화학공업 중심의 수출구조를 갖추기는 했으나 세계화에 걸맞는 경쟁부문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깊이 반성해야 한다. 또 극히 제한된 일부 품목에 수출을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타성에서도 탈피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전통적으로 비교 우위를 갖고 있는 산업들도 쉽사리 사양화하도록 방치할 것이 아니라 첨단화 및 정보화를 통하여 경쟁력을 북돋울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수출산업의 다양화와 함께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세계무역기구(WTO)가 산업지원을 제한하고는 있으나 R&D, 지역개발, 중소기업 및 환경지원등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이와 관련하여 정부의 적극적인 유인책이 요구된다.
이외에도 경제 안에 만연되고 있는 갖가지 낭비적 지출 역시 국제수지 불균형의 심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급속한 소득증가에 따른 경제 주체의 무절제한 소비문화에 기인하지만 그중 정부의 역할이 기대되는 부문도 적지않다. 대표적인 예가 에너지 과소비형 사회구조의 개선이라고 할 수 있다. 90∼95년 국내 연평균 에너지 소비증가율은 10%를 상회하여 같은 기간 경제성장률 7.5%를 크게 웃돌고 있다. 이는 1∼2%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선진경제의 경우와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끝으로 OECD가입에 따라 경제운영의 틀을 조정·전환하는 과정에서 경제원리대로 경제를 풀어가는 슬기가 발휘되기를 기대한다. 지금의 우울한 겨울이 내년 봄 밝은 전망으로 이어지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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