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대우전자가 프랑스의 톰슨 멀티미디어를 인수하기로 결정되었다가 백지화된 것은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자기나라의 첨단기술을 외국에 유출시킬 수 없다는 등의 이유를 내세워 프랑스정부가 결정을 번복한 것이라지만 속내는 자기나라의 대표적 국영기업을 한국같은 나라에 넘길 수 없다는 국내여론에 굴복한 것이라니 더욱 우리를 분노하게 한다. 그래서 인종차별적 편견이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다른 나라 언론들은 프랑스의 태도를 비합리적이고 국제상도의에 위배되는 행위라고 비난하고 나섰다.한마디로 프랑스가 우리나라를 얕보고 있다. 싸구려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라느니 가부장적 기업문화의 회사라느니 하고 우리의 한 기업을 트집잡는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나라를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한불간의 이번 마찰은 국가적 자존심 대 자존심의 대결이다. 프랑스가 나라의 자존심이 걸린 기업을 함부로 넘길 수 없다면 우리도 나라의 자존심을 걸고 명예를 방어할 수 밖에 없다.
프랑스의 태도는 전형적인 쇼비니슴의 발로다. 나폴레옹에게 무조건 충성을 바치는 쇼뱅이란 병사의 이름에서 유래된 이 말은 국제적 정의를 부정하고 다른 국가에 대해 배척적이고 호전적인 태도를 취하는 맹목적인 애국주의를 뜻한다. 이 쇼비니슴이 아무리 프랑스제라 하더라도 『명예로운 사람은 자기 양심을 잃기 보다는 명예를 잃는 쪽을 택한다』고 말한 사람도 프랑스인인 몽테뉴다. 한나라의 자존심도 양심에 우선하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에 대한 우리의 유감이나 격분은 당연한 것이지만, 이번 기회에 우리 스스로를 거울앞에 세워볼 필요가 있다. 왜 우리가 외국에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는지 자신에게도 물어봐야 한다.
6·25의 동족상잔으로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조그만 극동의 나라 한국은 그 후 반세기 동안 유럽인들에게는 여러가지 모습으로 비추어져 왔지만 그때마다 시선이 반드시 고운 것은 아니었다. 헐벗고 굶주리는 가난한 나라, 민주주의도 인권도 없는 군사독재의 나라, 그러다가 한강의 기적이 이루어지고 민주화도 진전이 되어 가는 듯하자 이제는 졸부의 나라, 부도덕한 나라로 인상지어져 있다. 게다가 한국이라면 세계 최후의 냉전지역으로 남아 세기의 문제아로 낙인찍혀 있고, 남북한을 혼동하는 일반시민이 차츰 줄어간다고는 해도 아직도 남북한이 동족임을 강조하고 통일을 외칠수록 한국이 폐쇄적이고 무법자적인 북한과 근본적으로는 동종이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우리 국민들의 작금의 행태는 한국의 위신과 체모에 대한 이들의 인식을 고정관념화하는데 충분했다. 국내외에서 짤랑대고 다니는 새돈주머니의 아니꼬운 과소비와 무절제, 아무 바탕도 알맹이도 없는 허세와 거드름과 아무 정신도 문화도 들어 있는 것 같지 않은 빈 가방들의 천박한 과시욕, 정직도 신의도 없이 질서도 규칙도 모르는 무도, 깨끗한 선거조차 한번 해본 적이 없는 후진, 그리고 온 나라가 부정부패로 썩고 있는 악취, 이런 나라에 눈살 찌푸리지 않고 코 막지 않을 선진외국이 어느 나라이겠는가. 이런 것이 우리 나라 자존심의 실체라면 어느 나라 자존심 앞에 맞세울 수 있겠는가. 이러고도 얕보이지 않는 나라이자면 딴 나라가 무슨 돋보기로 돋보아 주어야 하겠는가.
세계화 하자고 한다. 21세기에는 한국이 세계의 중심국가가 되자고 한다. 국위는 분장될 수도 없고 도금될 수도 없다. 나라의 위광은 나라의 전통과 문화와 함께 정치·경제 수준과 국민의식수준의 총화인 국력의 안광이다. 한 기업이 세계화에 도전한 그 의기와 기세는 가상한 일이요 거기에 걸린 제동은 분한 일이지만 결국 세계화가 국위의 지원 없이는 한 나라의 쇼비니슴 앞에 무력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번에 보여주었다.
한 개인의 부가 곧 인격은 아니듯이 한 나라의 부가 곧 국력은 아니다. 국민 개개인의 인격과 사회 전체의 품격 없이 국격은 없고 이 국격없이 세계의 중심국가가 될 나라의 위의가 생겨나지 않는다.<본사논설고문>본사논설고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