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수도 리마에 있는 일본대사관저에서 반정부좌익게릴라들에게 인질로 억류됐던 이원영 한국대사가 70여시간만에 조건부로나마 석방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이대사는 당초 일부 외국대사들과 함께 페루정부측과의 모종의 중재임무를 수행한 뒤 관저로 복귀한다는 조건으로 풀려났으나 페루정부가 복귀를 반대한데다 석방된 대사들간의 공조불능 등으로 복귀하지 않기로 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부는 이를 계기로 우리 외교관과 재외공관보호대책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이대사의 석방에 때 맞추어 페루정부와 게릴라들간의 화해조짐이 보인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동안 일체의 협상을 거부했던 후지모리 대통령이 인질들의 무조건 석방을 요구하면서도 무력에 의한 구출시도를 하지 않을 뜻을 천명하면서 수도와 전기공급을 재개했다. 또 게릴라들도 외국인 인질들은 단계적으로 석방할 뜻을 비치면서 정치적인 해결을 강력히 희망하여 곧 비밀협상이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 일단 기대해볼 만하다 하겠다.
국내외적으로 비무장민간인들에 대한 테러와 납치·인질행위 등은 규탄받아야 할 범죄행위다. 과거 60∼80년대 중동과 유럽 등지에서 기승을 부렸던 과격분자들의 테러·납치행위 등은 냉전체제가 종식된 이후에는 중남미 일부에서 여전히 고개를 들고 있다. 이 지역에서의 게릴라 활동은 독재권력과 인권탄압, 그리고 빈부격차 등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들은 정부에 대한 압력수단으로 외국공관과 외교관 및 외국인 등을 공격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페루·콜롬비아 등 정정이 불안한 나라에서 이번 같은 사건의 재발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는 만큼 정부는 이번 사건을 교훈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비엔나협약에 의해 주재국은 외국공관과 외교관을 보호할 책임과 의무가 있지만 이번처럼 게릴라가 기습·공격할 경우 재외공관은 완전속수무책이다. 현지 정부와 반정부게릴라들간의 대결·전쟁속에 엉뚱하게 인명피해를 당할 여지가 큰 것이다.
때문에 본국에서 무장경비원들을 대거 파견할 수도 없는 만큼 본부의 지휘 아래 현지공관의 각별한 노력이 요망된다. 먼저 게릴라들에 관한 정보, 특히 테러, 공격 등에 관한 정보를 부단히 수집하고 분석하는 일이다. 그렇게 해서 사전대비를 서둘러야 한다. 다음 현지정부와 긴밀한 연락을 통해 공격 위험의 가능성이 있을 때는 재빨리 경찰력의 파견을 요청해야 할 것이다. 특히나 정정이 불안한 나라일수록 현지 공관이 정부와 지나치게 밀착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된다. 이같은 조치들은 공관과 외교관은 물론 우리 교민들의 보호를 위해서도 매우 긴요한 것이다.
전세계에 140여개의 대소공관이 상주하고 있고 또 전세계 거의 각국에 우리 교민들이 없는 곳이 없다. 우리와 관계없기 때문에 테러 등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안이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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