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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는 문화,가라앉음의 문화(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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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는 문화,가라앉음의 문화(문화칼럼)

입력
1996.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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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중매체에서 많이 보이는 말 가운데 튄다는 말이 있다. 그 유래와 의미가 불분명한대로, 이 말은 사회의 어떠한 분위기를 포착하고 또 시대의 흐름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튄다는 것은 바탕에서 튀어 나오는 듯하는, 강한 감각적 인상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튀는 옷차림, 튀는 연기, 톡톡 튀는 디자이너, 이러한 용어에서 볼 수 있듯이 그것은 겉모양의 특성만이 아니라 사람의 동작, 개성적 성격 등 감각적인 것을 넘어 좀 더 확대된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또 앞으로 그것의 사용 범위는 지금보다 더 넓어질 가능성이 있다. 머지 않아 튀는 장관이 나오고, 톡톡 튀는 대통령후보도 나올 것이다. 어쩌면 대통령 후보의 경우 이미 튀느냐 튀지 않느냐로 서열이 정해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학문과 생각의 세계에서도 어렵지 않게 사실에의 충실이나 논리의 정치함보다는 튀어오르는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기발한 이름을 만들어내는 데에 관심이 쏠리는 것을 본다. 톡톡 튀어오르는 뉴스와 이야기를 생명으로 하는 것이 대중매체라는 것은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도 없다. 튀어오름은 문화영역에서는 오히려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튀는 연기는 물론, 미술이나 음악이나 문학의 작품을 두고 튀는 작품을 말하는 것은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결국 문화현상은 감각의 세계, 보임의 세계에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고, 튀는 것이 감각현상의 특징을 말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문화현상에서 중요한 것일 수 밖에 없다. 따분한 일상생활에서 눈을 번쩍 뜨게 할 자극을 제공하는 것은 예술 기능의 하나이다.그러나 문화나 예술의 의미가 튀는 자극을 주는 데에만 한정될 수는 없다.

그것의 보다 깊은 의미는 사람의 마음을 가라앉게 하고 그것을 삶의 깊은 조화로 이끌어가는 데에 있다. 고전적 시, 음악 또는 미술이 주는 위안은 여기에 있다. 튀는 것이 아니라 가라앉는 것이 예술적 마음의 보다 깊은 움직임이다. 튀는 기능도 여기에 관계되어 참다운 의미를 갖는다. 따분한 잿빛의 삶에서 튀어오르는 것은 이 잿빛의 삶을 새로이 비추고 삶의 큰 바탕으로 우리를 새롭게 돌아가게 한다. 이 바탕과의 관계 없이 튀는 것으로만 이루어진 문화는 삶을 끊임없는 소모 속에 흐려지게 한다. 그러나 오늘날 문화는 전적으로 튀는 것으로만 값이 매겨진다. 이벤트화하고 뉴스화하고 영상화해서 감각과 감정의 소비 대상이 되는 것만이 의미를 갖게 된다. 이것은 근본적으로는 대중적 소비주의의 한 결과이다. 그러나 이것을 조장하고 확대하는 것은 오늘날의 대중매체이다.

튀는 것만을 좇으려는 뉴스 매체의 성향은 세계 다른 어떠한 곳에서보다 우리의 매체들에서 아낌없이 발휘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 영향하에서 문화나 정치나 사회와 같은 분야에서도 눈과 귀를 반짝 뜨게 할, 튀는 것이 아니면, 말하고 주의하고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김우창 고려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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