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고 외롭고 도망치던 20대/그때 만난 ‘20대의 혼돈과 힘’/지금 20대는 무엇을 먹고 사는지그때 그 시절 눈길 위의 편력을 생각하면 아직도 염통 근처가 두근거린다. 나의 20대는 가출과 혼돈과 마구잡이 걷기로 점철된 시기였다. 무엇을 위하여 그랬나? 그 무엇을 알기 위해서였다. 그럼 그게 무엇인가? 모르겠다. 그저 산을 넘었고 머물렀고 비틀거리며 사람을 만나 사소한 인연을 맺었고 냉수 같은 새벽에는 인연으로부터 도망쳤다. 그러다가 86년인가, 나는 지방의 어느 소도시의 겨울 한가운데, 무럭무럭 톱밥 연기를 피워올리는 서점에 들어갔다. 거기서 박상륭의 소설 「열명길」 「유리장」을 만났다.
그 책은 서가의 제일 아래쪽, 마대걸레가 가끔 닿은 듯 거무튀튀한 빛깔의 표지를 하고 1973년이라는 날짜가 적힌 판권을 단 채 삭아가고 있었다. 특가 360원 균일, 삼성신서의 아흔일곱번째 책이었다. 전날의 이취로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나는 그 책을 골랐다. 단지 싸다는 이유에서. 돌아가면 혼자가 되는 절의 골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읽을 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눈길 삼십 리, 한손으로 책을 펼치고 이따금씩 코를 풀며 걸어갔다.
그 책에는 두 개의 소설이 들어 있었다. 「열명길」과 「유리장」. 서구식 교육만 열몇해 강하게 받아온 덕분인지 「열명길」도 「유리장」도 무슨 말인지 알 길이 없었다. 바람이 잉잉 우는 눈길 위에는 들춰볼 사전도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특히 한자로 쓰인 유리장은 「구리장」인지 「강리장」인지 「구리량」인지 서너 해가 지나도록 헷갈렸다. 이제 뜨뜻한 방안에 사전을 곁에 둔 처지로 제법 알게 되었으니 말해볼까. 「유리」는 중국의 주 문왕(주 문왕)이 은의 폭군 주에게 유폐되었던 곳을 말한다. 얼마 전에는 영화 제목으로도 쓰였다. 「장」은 작가 박상륭의 이전 발표작 「쿠마장(각설이 일기 기일)」이나 「산동장(각설이 일기 기이)」로 미루어 장터, 장면이라는 뜻을 중의적으로 쓰는 것 같다. 하여간 그때 나는 제목의 뜻을 알기 고사하고 제대로 읽지도 못하면서 산비탈의 양지 같은 소설에 빠져들었다. 「리로 리런나 로리라 리로리 로라리 리로런나 로라리 리로리런나 로리라 리로리로라리」의 노래가 들려오고 끝나지 않을 듯한 요설, 주문이 풍년든 세계로. 또 연꽃자세, 시럽, 매독, 화룡, 대제장, 아편, 자신을 비우고 비워 진공이 될 때까지 비우는 방법, 사면 육십사방이 바다, 인구 이천삼백여 명, 그 모든 것이 뒤섞인 중음계 열탕 같은 나라 속으로.
소설에서 눈을 들었을 때 새삼 내가 20대라는 게 다행스러웠다. 나의 20대에, 작가가 20대에 쓴 20대식의 혼돈스러운 소설에 풍덩 빠진 것은 행운이었다. 지금 내게 이 소설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 소설은 20대의 혼돈 에너지로 충만하고 간헐적인 충일에 의해 20대를 감득시킬 수 있는 작품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다. 심심할 때 지금의 20대는 그 무엇을 제대로 먹고나 사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 무엇이 무엇인가는 아까 말했다시피 모른다. 무엇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닌지도 모른다. 모른다, 중요하다, 아니다도 필요없다. 그럼 도대체 넌 뭐며 난 뭐란 말이냐. 이럴 때 들려올 법한 박상륭의 일갈인즉. 아으, 누가 저 독룡을 퇴치하고 공주를 구할 것이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