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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기 출간 조선족 작가 김재국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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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기 출간 조선족 작가 김재국씨

입력
1996.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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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그리던 조국 “한국은 없다”/못생긴 여자는 ‘연변 가무단’/여자가이드 찾는 늙은 작가/매맞는 중국동포 연수생/한국사회에 대한 매운 비판/그러나 그속엔 모국에 대한 진한 애정이…그에게 한국은 없는가.

조선족 작가 김재국씨. 서른일곱살의 교포 3세. 한국문학을 전공한 「중국 청년작가 조선족 대표」. 그에게 한국은 실재하되 「없는」 나라다.

김씨뿐만 아니라 200만 중국 조선족에게, 한국은 이제 기대와 희망의 조국이라기보다는 「없는 나라」 혹은 「잊어버리고 싶은 나라」가 되어 버렸다. 우리가 『일본은 없다』며 일본과 일본인들을 조롱하고 있을 때, 중국의 우리 동포들은 모국에 대한 그만큼의 절망과 분노를 삭이고 있었다.

『한국에 만약 전쟁이 다시 한 번 난다면 총을 들고 선참으로 달려와서 한국 놈들을 쏴 죽이겠다』

김씨는 최근 국내에서 출간한 「한국은 없다」(민예당 간)에서 이렇게 끔찍한 말을 전했다. 한국에 나왔던 중국 연수생들이 귀국하면서 되뇌인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하나 설사 그런 악설을 퍼붓고 떠난 사람일지라도 귀국하는 첫날부터 한국 사랑에 빠지리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고 썼다.

그는 94년 3월부터 올 1월초까지 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 대학원에서 한국 현대문학을 공부했다. 90년에 통역차 40여일 고국을 방문한 이후 두번째다. 이번에 중국으로 돌아가기 전 한 달 동안은 150만원과 구형 노트북컴퓨터, 사진기 1대만 달랑 들고 제주도에서 통일전망대까지 전국 26개 도시를 누볐다. 자신의 조상이 그토록 염원하고도 밟지 못했던 조국의 땅을 대신 밟아보고, 동족의 삶을 숨쉬어 보았다. (중국에서 교수생활을 하며 한화로 약 4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았던 그에게 150만원은 큰 돈이었다. 여비 중 100만원과 노트북 컴퓨터는 한 기업체의 간부가 잡지에 실린 그의 글을 읽고 보내주었다고 한다)

「한국은 없다」는 이렇게 조국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꾸밈 없이 쓴 글이다. 그러나 그의 글은 기왕 국내 외에서 나온 여느 한국론보다 값진 한국론이자 한국인론으로 결실했다. 어떤 개념의 형에 끼워맞추지 않고, 애초부터 애증의 감정을 떠나서 쓴, 한국과 한국 사람들에 대한 솔직한 「보고서」이다. 그래서 읽는 이들의 가슴은 더욱 서늘해질 수 밖에 없다.

김씨는 우선 그 자신을 포함한 국내 중국동포 유학생, 연수생들의 생활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못생긴 여자 TV출연자를 「연변 가무단 여배우」에 비유하는 한국의 코미디 프로그램. 중국 유학생들은 이를 보고 박장대소하는 한국 학생들에게 『타마디』(제기랄 것들)라는 한마디 욕을 내뱉고 고개를 돌린다.

사람좋게 생긴 김씨도 『인간(그것도 동포) 사이에 매를 대는』 한국인들에게는 치를 떨 수밖에 없었다. 부산의 한 회사에서 일하는 자신의 6촌 외조카(역시 중국동포) 로부터 매맞는 연수생들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인들은 매라는 야만적인 행위에 너무나 잘 길들여져 타인에게서 한 두 대 맞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중국 조선족은 이런 것에 전혀 단련되지 않았다』

태극기를 꽂고 왔는가? 중국의 들꿩(야계, 몸파는 여자)에게서 「달러 아가씨」(『달러를 줄테니 아가씨를 구해 달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한국 남자들을 가리키는 말)로 조롱당하는 한국인들, 중국에 갖다 와서 『태극기를 꽂고 왔다』느니 『중국 대륙이 한반도의 배꼽 밑에서 신음하더라』느니 떠드는 이들을 보며 김씨는 차라리 『태극기를 팔고 왔다』고 말하라 한다.

나이 60이 다 된 한 작가가 『중국 관광을 떠나고 싶은데 약 20일간 부부처럼 함께 다닐 수 있는 젊은 여자를 소개해줄 수 없는가』라고 부탁해왔을 때 김씨는 집 떠나 공부하고 있는 자신보다 그가 더 불쌍해 보였다. 물론 주변에서 익히 들어 알고 있고, 그가 짧은 체류기간 동안에도 얼마든지 겪었을 법한 에피소드들이다. 그러나 그의 글의 진가는 여기에서 나아가 바로 지금 한국인의 생활상을 조목조목 날카롭게 비판하는 대목들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그대로 한국문화론이자 중국문화론이다.

신토불이라는 억지 한자를 만들어 쓰고, 조선족을 만나 「콤플렉스」니 「패러다임」이니 부러 영어를 사용하는 한국인들을 보고 김씨는 속보다 겉을 꾸미는 한국인들의 「변태성」을 간파한다. 그럴 때는 『야, 너는 자존심마저도 없는 놈이냐』고 쌍욕을 퍼붓고 싶다.

우리의 술 문화, 공자 모시기, 묘지제도, 군대폭력, 공직자 부정부패 문제 등이 모두 그의 비판대에 오른다. 자기 이름을 놔두고 「OO엄마」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한국 여인들을 볼 때 그는 「우주인을 보는 것만큼이나」 놀라왔다.

『중국이 후진국이라는 점, 그래서 자칫 하다가는 한국인들로부터 자기 체신이나 잘 지키라는 반발을 사기 십상이라는 점을 알기 때문에 글을 쓰려고 작정하고도 막상 필을 들고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민했다』는 김씨지만, 일단 세운 필은 거침이 없다. 우리가 잃어버린 고유의 우리 말로, 쉽게쉽게 써내려 간 그의 글은 평이하기 때문에 그만큼 더 따갑다.

『어디엔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고, 안으로 오므라들게만 하고, 자신을 훌훌 내치지 못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 이 나라 어느 구석엔가 강하게 살아 숨쉬는 듯했다』

김씨는 『중국인들 중에는 멍청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더라』고 말하는, 마치 뛰기 위해 사는 듯한 한국인들의 조급스런 삶의 모습을 이렇게 집어내고 있다. 그가 본 한국인들에게는 팥죽 끓듯하는 희와 노만 있지, 애와 낙의 정서가 없다.

이런 김씨도 어느덧 한국생활에 물들어 버렸을까. 지난해 8월 아내 송애(34)씨가 한국으로 와 25일간 머물다 돌아가며 김포공항에서 『당신이 나에게 가장 많이 들려준 말이 뭔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사랑한다는 말이 아니냐』고 대답했다. 그러나 아내의 대답은 『빨리빨리』였다고 한다.

김씨는 중국 지린(길림)성 훠룽(화룡)현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가 경북 안동지역을 떠나 중국으로 이주했고 6살에 조국을 떠났던 그의 아버지는 그곳에서 한의사로 일했다. 베이징(북경)의 명문 중앙민족대학 조선언어문학학과에서 문학을 전공한 뒤 86년부터 한국에 연수 오기 직전까지 창춘(장춘)사범대학 한국문학연구소 교수로 있었다. 82년 단편 「우의의 날개」로 등단한 뒤 10여 권의 소설과 수필집 등을 냈고 권위있는 천지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중국 조선족 문단에서 급부상하는 작가로 꼽힌다. 국내에도 그의 단편이 소개돼 있다.

아내 송씨 역시 교포 3세로 지린대학 대외경제무역학원 부교수. 지금 그는 삼국지의 새로운 우리말 평역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99년까지 10권 분량으로 국내에서 발간할 계획.

『고국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생각하면, 이 글을 쓰고 나니 마치 망나니가 된 기분』이라며 김씨는 자신의 글이 혹여 오해되지 않을까 저어했다.

『나름대로 「한국병」을 진단하려 한 이 글이 내가 한국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목소리의 전부는 아니다. 이 땅과 이 나라 국민을 찬미할 노래들은 고국이 나에게 준 가장 귀중한 선물로 생각하고 중국 대륙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목청껏 부르겠다』는 것. 그러나 그의 찬미는 나중에 듣자. 우선 우리의 오그라든 가슴을 펴고, 그의 가슴시린 조국체험과 추상같은 비판을 새겨보아야 한다.<하종오 기자>

□약력

59년 중국 지린(길림)성 훠룽(화룡)현 출생·37세

82년 단편소설 「우의의 날개」로 등단

83년 베이징(북경) 중앙민족대학 조선언어문학학과 졸업

83∼86년 격월간 「도라지」 「북두성」 편집부 주임

86∼93년 창춘(장춘)사범대학 한국문학연구소 교수

92년 제4차 중국청년작가 대표대회 조선족 대표

94∼96년 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 대학원에서 한국현대문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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