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겨울 연극계에 고전극 바람이 불고 있다. 영국극단의 「템페스트」가 내한 공연을 가졌으며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대극장 공연형태로 선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지난해 오태석 연출의 「로미오와 줄리엣」, 기국서 연출의 「미친 리어」, 그리고 올해 필자 연출의 「햄릿」 등이 공연되면서 두드러지는 연극현상인 셈이다.혹자는 오태석 기국서 이윤택 같은 실험적인 연출가들이 웬 고전극 연출이냐고 의아해 했고 게다가 이들이 모두 극작가를 겸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혹의 폭은 더 커졌을 것이다. 그러나 단적으로 말해서 이런 고전극 바람은 바람직하고 바람직하다. 우리 연극이 조악한 말장난과 해체를 위한 해체의 분열상을 극복해 나가는 출구이며, 한국연극이 세계 연극의 변방에 위치해 있다는 열등감을 불식시킬 수 있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60∼70년대는 번역극이 수준 높은 연극인양 인식되었고 80년대 이후에는 또 창작극을 해야만 한국연극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는 풍토가 팽배했었다. 그러나 단순모방 형태의 번역극이나 극적 구성력이 치졸한 창작극 모두 연극 발전을 위해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특히 97년 세계연극제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 한국연극은 세계연극의 흐름과 대등한 조건과 환경을 준비해야 한다.
이제 우리 연극도 오이디푸스 같은 희랍극에서 셰익스피어 괴테 체호프 베케트 브레히트 등 세계연극의 대표적 레퍼터리를 선보일 수 있어야 하고, 어디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는 창작극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레퍼터리들이 모두 한국연극의 독자적 공연양식을 갖추어야 한다는 명제를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어떤 연극이라도 한국 연극인에 의해 막이 오르는 연극은 한국연극인 것이다. 고전극을 한답시고 외국의 공연양식을 어설프게 모방하고 흉내내는 고전극은 의미가 없고, 관객들에게 지리함과 실망감을 안겨 줄 것이다. 요즘 부는 고전극 바람을 환영하면서도 일말 불안감이 엄습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독자적인 해석과 주체적인 방식으로 고전극을 수용하는 길만이 한국연극의 한 단계 성숙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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