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얼음판을 밟듯 진행되던 정기국회가 막바지에 안기부법 개정안 처리를 둘러싸고 파행속에 막을 내린 것은 한국정치의 후진성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여당은 연내에 안기부법과 경제관련법안의 처리를 위해 임시국회소집을 요구했고 야당은 결사저지를 선언하여 한바탕 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당초 올 정기국회는 15대 개원국회의 지연에서 드러났듯이 내년 대통령선거와 관련, 여야의 힘겨루기로 매우 어렵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었다. 각계의 전문적인 초선의원들의 활약으로 어느 정도 국정감사를 내실화했고 또 뜨거운 이슈의 하나였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 동의안을 표결로 처리한 것은 성과라고 평가할 수 있지만 야당이 정치현안들과 연결시켜 예산안을 법정기일 보다 10여일 늦게 처리한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예나 이제나 이 땅의 정치 발전을 가로막는 뿌리깊은 고질병이 몇가지 있다. 그것은 국리민복 우선보다 당리당략을 앞세우는 것, 법과 질서를 지키지 않는 것, 의견개진과 토론을 기피하는 것, 국회를 국정심의와 토론의 장이 아니라 싸움판으로 만드는 일들이다. 지난 18일 폐회직전 국회에서는 종일 안기부법을 놓고 이같은 고질병이 그대로 드러났다. 야당이 의장, 부의장을 감금하여 회의진행을 원천저지하고 여야의원들이 욕설과 야유, 멱살잡이를 벌인 것은 추태가 분명하다.
되풀이 강조하거니와 93년말 안기부법개정때 이른바 민주개혁운운하며 간첩과 반국가 행위를 적발·분쇄하는 열쇠인 안기부의 대공수사권에서, 즉 국가보안법상의 찬양·고무(7조)와 불고지죄(10조)를 삭제한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었다. 물론 지난날 안기부가 이 조항을 반정부인사 탄압에 이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93년 법개정으로 안기부직원의 정치관여와 직권남용이 엄금됐음에도 국민회의가 내년 대선에 용공음해에 악용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한 것은 지나친 기우일 듯하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국민과 재야·시민단체가 감시하고 았지 않은가. 특히나 국회폐회날 자민련이 안기부법안에 찬성·반대·조건부찬성 등으로 갈팡질팡한 것은 공당의 자세가 아니다.
정기국회의 파행으로 안기부법의 개정지연은 물론 중요한 경제·민생법안통과까지 저지된 것은 한심한 일이다. 5대 신항만 건설과 고속철도건설 촉진을 위한 관련법, 농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농업협동조합 촉진법, 청소년을 유해 환경으로부터 보호하기위한 법, 환경영향평가를 강화하는 법안, 성 폭력범죄 처벌법 등은 한결같이 경제건설과 국민생활향상을 위해 긴요한 법들이다.
아무튼 이번 임시국회에서는 안기부법 개정안과 경제·민생관련 법안을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 정치권은 한국정치의 고질병에서 벗어나 국익차원에서 당당한 토론과 심의를 거쳐 민주적인 표결로 처리해야 한다. 무작정 결사저지는 비민주적 행위로서 국민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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