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집권 2기 비서실장인 어스킨 보울스는 연봉이 1달러다. 노스 캐롤라이나주의 기반이 탄탄한 금융가 출신인 그는 돈에 연연하지 않고 공직에 「서비스」자세로 임한다는 사실을 연봉으로 보여주고 있다. 크라이슬러사의 리 아이아코카 전 회장이 회사정상화를 위해 연봉을 1달러만 책정, 요란한 주목을 받았던 것과 비교하면 아주 조용히 지나가는 에피소드다.클린턴 대통령의 각료급 14명 중 2기에서 자리를 뜨는 7명의 사연도 가지가지다. 로버트 라이시 노동장관과 로라 타이슨 국가경제위원회(NEC) 의장의 귀거래는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이다. 라이시 장관은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보스톤으로, 타이슨 의장은 남편과 아이들이 기다리는 로스앤젤레스로 각각 돌아간다. 이들은 일에 지쳤다고 고백했다. 『장관자리가 눈코 뜰새없이 바빠 감당하기가 어려웠고 그런만큼 가족들에게는 소홀히 했는데 이제는 가족휴가를 위해 물러날 때가 됐다』고 밝혔다.
헨리 시스네로스 도시주택장관은 돈이 아쉬워서 떠난다는 사실을 명백히 표시했다. 『14만달러의 장관연봉으로는 종전의 생활수준을 유지하거나 여성문제와 얽힌 소송비를 감당하기가 벅차 돈벌이에 나선다』는 것이 사임의 변이다.
이들은 장관자리가 지탱하기 매우 힘든 격무의,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가족과도 함께 지낼 수 없는 3D업종의 성격을 지녔음을 말한 셈이다. 또한 돈벌이가 되지 못한다. 돈을 모으려면 장관자리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장관자리를 떠나야 하는 게 이곳의 현실이다. 돈과 「공직의 명예」가 동시에 보장되지 못하고 둘 중의 하나를 고르는 양자택일이다.
한술 더 떠서 클린턴 대통령은 부부변호사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된 후 봉급과 저서의 인세 외에는 추가소득 없이 소송비만 거액으로 지출, 사실상 빚쟁이신세가 돼 있다. 뉴트 깅그리치 하원의장은 대학에 출강하면서 의원사무실의 문구류 수십달러어치를 사적인 용도로 썼다고 조사를 받는 판이다.
국내에도 장관·의원 등 고위공직자가 돈과 권위의 향유자에서 일과 서비스의 제공자로 탈바꿈할 날이 멀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사회수준이 「부인이 1억4,000만원을 받는 것을 남편인 장관이 몰랐다」는 얘기를 「현대판 고사」로 여길 날이 다가온다는 얘기다. 돈이 있기 때문에 돈에 초연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으면 더욱 좋을 것이다.
공개된 재산을 보면 100억원대 이상의 공직자가 제법 있다. 누군가 재산소득을 바탕으로 1원의 봉급을 자청, 일과 서비스에만 전념한다면 새로운 역사를 꾸려가는 사람이 될 것이다. 물론 일과 서비스에 전념한다는 전제가 중요하다. 처음엔 모방에 불과한 것으로 보일지라도 그가 일에 헌신한 나중 결과는 고위공직의 성격을 바꾼 귀중한 사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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