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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믹’의 의미(공연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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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믹’의 의미(공연읽기)

입력
1996.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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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음악의 오선악보에서 음의 높낮이와 길이 외에 작곡자의 의도를 반영하는 표현부호가 발달한 것은 19세기에 들어와서다. 작곡자가 직접 자신의 곡을 연주하던 시대가 지나고 직업연주자들이 나오게 되니까 작곡자는 어떻게 해서든지 연주자에게 자신의 의도를 알리고자 이런 부호를 쓰게 된 것이다.그러나 아무리 부호가 발달한다 해도 연주자가 작곡자의 의도를 100% 알 수는 없는 것이니 작곡자와 연주자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이 서양음악 연주의 묘미인 것이다. 연주자는 영원히 부분적 기록일 수 밖에 없는 악보를 근거로 작곡자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기 해석」을 만들어낸다.

연주를 「재창조」라고도 부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연주 스타일을 평할 때 「아카데믹한 연주」라는 말을 쓸 때가 있다. 우리말로 학구적인 연주라고 번역하면 가치가 높은 것으로 여겨지지만 서양 말의 의미로는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어딘가 개성적인 자기 해석 없이 악보에만 맹종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연주에 이런 말을 쓰는 수가 많다. 물론 깎아내리는 말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19세기 이전의 음악, 표현부호가 적은 음악일수록 악보 연구를 깊이 해야 하므로 이럴 경우 「아카데믹」이라는 말의 긍정적 의미가 커진다. 요즈음은 과거의 악보와 악기를 치밀하게 연구해서 당시의 사운드를 재현하려고 하는 소위 「정격연주」가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역설적으로 연주자의 해석 영역이 그만큼 커지는 것이며 정격연주라도 연주일 때는 어디까지나 생동감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 「아카데믹」하다는 것 만으로는 능사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학구적」이라는 말에 특히 큰 의미를 주는 것은 「공부」에 대한 습관적 강박관념 때문이거나 연주자의 대부분이 교수를 겸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학위와 연주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듯이 여긴다면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다.<조성진 예술의전당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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