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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환 감독에게 격려를/차범근 축구인(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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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환 감독에게 격려를/차범근 축구인(아침을 열며)

입력
1996.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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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박종환 감독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 전혀 다른, 그래서 서로 좋아할 수 없는 관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릎이 깨진채 쓰러져있는 그를 경쟁이나 하듯이 짓밟는 언론과 팬, 그리고 협회나 축구인들을 보면서 분노가 치미는 것은 아마 나 역시 감독이라는 직업을 가진, 그의 동료라는게 큰 몫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나는 우선 감독이라는 것이 과연 양쪽 어깨에 별을 단 사령탑인지 아니면 손비비는 것도 모자라 발까지 비벼야하는 졸개인지부터 묻고 싶다. 적어도 우리의 경우는 권위와 힘을 어깨에 실어주면서 소신껏 일해주기를 바라는, 혹은 큰 감독이 자신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선수를 지도하다가도 단장이 나타나면 뛰어나와 「함께 있어 드려야」 좋은 감독이 될 수 있는 사회. 심지어는 경기전 선수들이 몸을 푸는 중요한 시간에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는 「단장님」의 말상대가 되어주기 위해 운동장을 등지고 단장의 얼굴을 마주하는 어처구니 없는 감독을 요구하는 사회. 너무나 아마추어적인 한국축구에서, 바로 이것이 감독이 대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뿐 아니다. 훈련을 계획하고 연구하는 것보다 같이 어울려 주는 감독을 훨씬 유능한 지도자로 꼽으면서,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축구계에는 훌륭한 지도자가 없어서 외국감독을 영입해야 한다고 떠든다.

「과학적인 훈련?」 단언컨대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정 기간의 대회를 앞두고 선수들의 신체리듬을 고려한 과학적인 훈련계획서를 짤 수 있는 감독은 단 한사람도 없다. 왜냐하면 그것을 제대로 가르칠만한, 또는 배울만한 과정이 축구협회에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과정이야 어쨌든 그래도 박감독은 매일 머리를 짜내면서 컴퓨터 앞에 앉은 나를 따돌리고 3번씩이나 우승을 했다. 지금 현장에 있는 감독중 누구도 그를 이겨보지 못했다. 그가 아니면 일화의 3연패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올해 초 그는 어떤 패장보다도 더 초라한 모습으로 일화를 떠났다. 구단에서 돌린 보도자료 한장으로 그는 끝난 것이다. 그때도 내가 속으로 몹시 분개했던 기억이 난다.

구단이 싫다는데 억지로 붙어있겠다고 할 감독은 없다. 그렇다면 아무리 박종환식의 축구나, 혹은 그 개인의 문제가 걸림돌이 된다고 하더라도 『3연패를 한 나로서는 더 이상 한국축구에 목표가 없어졌으므로 잠시 쉬겠다』는 식으로 최소한의 모양을 갖추게 하면서 나가게 했어야 옳을 것이다.

그때도 언론은 구단의 입장만을 얘기해 주었을뿐 한국축구의 큰 기둥 하나를 불쏘시개로 만드는데 대한 질타는 전혀 없었다. 나는 그런 언론을 향해 비겁하다고 얘기한다. 언젠가 독일인 친구가 포함된 국제축구연맹(FIFA) 실사단이 한국에 왔을 때 못나가겠다고 버티는 나를 설득하려고 밤늦게 우리 집을 찾아온 축구협회의 메신저는 「대표팀감독」이라는 미끼로 나를 회유하려 했다.

그때 나는 『대표팀감독 자리는 월계관이 아니고 십자가』라고 했다. 한국축구인을 통틀어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나로서는 엄청난 책임과 의무를 피할 수 없지만, 결코 그 자리가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차지하고 싶은 달콤하기만한 자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얘기하건대 지도자는 양쪽 어깨에 별을 단 장군이지 졸개가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도 공부하고 실력을 쌓아서 당당한 전문가로서의 자질과 기품을 갖추어야 한다. 지도자 없음을 한탄하고 무시하는 협회나 프로팀은 과연 장군을 원하는지 졸개를 원하는지 한번 깊이 반성할 때이다. 협회의 무능을 질타하는 지도자 그룹은 우리가 얼마나 선수지도에 최선을 다했는지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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