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초본을 발급받으러 동사무소에 간 사람이나 국무회의에 참석한 고위공직자나 한 번쯤 읽어보게 되는 「구호」가 있다. 현정부가 출범하면서 내건 국정지표. 1 깨끗한 정부, 1 튼튼한 경제, 1 건강한 사회, 1 통일된 조국. 국정지표는 어느 것 하나 덜 중요한 것이 없다 하여 모두 1번으로 액자에 새겨 넣는다. 태극기 바로 옆에 걸려 있어 그 중요함을 더하고 있다.깨끗하지 못했고, 튼튼하지 못했고, 건강하지 못했고, 통일되지 못했기 때문에 내건 국정지표였을 것이다. 그래서 가장 시급한 목표였을 것이고 그래서 가장 역점을 두고 실천하려 했던 정부의 시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사정들을 보면 이 국정지표가 너무나 허황해져 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4년 이상 내걸렸던 국정지표의 끝자락은 그것을 내걸기 이전의 상황보다 덜하지 않다. 수많은 정부 고관대작이 「깨끗하지 못한 이유」로 법정에 섰다.
해방이후 처음 개정되는 노동법은 「튼튼하지 못한 경제」 때문에 본래의 목적마저 지워져가고 있다. 각 분야의 사회문제가 「병적인 방향」으로 내닫고 있다. 남북문제는 그 어느 때보다 경직돼 「영원히 분단될 것 같은」 양상으로 향하고 있다. 국정지표의 액자를 보면서 허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이다.
전정권은 「보통사람들의 위대한 시대를 연다」는 제목으로 1 민족자존, 1 민주화합, 1 균형발전, 1 통일번영을 내걸었다. 그 전의 정권은 제목을 생략하고 1 민주주의의 토착화, 1 복지사회의 건설, 1 정의사회의 구현, 1 교육개혁과 문화창달을 내걸었다.
국민들은 동사무소에서 먼지를 털어 새롭게 내거는 「국정지표 액자」를 바라보면서 정권이 바뀌었음을 실감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어떻게 피부에 와 닿아가는가를 동사무소에 갈 때마다 생각한다.
다시 정권이 바뀔 때 쯤이면 이번에는 어떤 문구가 등장할까 궁금해 한다. 앞에 내걸렸던 지표가 뒤에서 흐려지고, 그래서 또 다시 비슷한 문구가 등장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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