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은 명예퇴직을 당한 많은 남성들 이야기로 쓸쓸하다. 「회사」만이 인생의 전부였고 그래서 힘겹게 달려온 40∼50대 남성들에게 갑자기 닥친 퇴직의 바람은 냉혹하기만 하다.며칠을 방황하다 겨우 마음을 추스린 뒤 신문에 실린 각종 부업 성공사례를 읽어 본다. 그러나 당장 무엇을 해야 하나 하는 고민 이상으로, 내심 자신을 더 괴롭히는 문제는 가족 안에서 위축되어 가는 「가장으로서의 위신」이다.
남편의 명예퇴직을 바라보는 부인의 심정도 고통스럽긴 마찬가지다. 이제까지의 남편의 수고와 노력이 안쓰러워 어떻게 하면 위로할 수 있을까 노력해 본다. 집안 분위기를 밝게 만들고, 온 가족이 합심해서 격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가정으로 돌아온 남편」이 편안하지 않다. 누구의 탓인지 모르지만 자꾸 갈등이 생기고 싸움이 잦아진다.
아마 위의 이야기는 많은 남성 퇴직자 가정들이 직면한 상황일 것이다. 이같은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보다 극단적 「회사중심사회」인 우리 사회에 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성장기에 「회사인」에게 가족은 없었다. 남성들에게 「가장」이라는 꼭대기의 자리는 있었지만, 가족과 함께 하는 공간을 확보할 수는 없었다.
경제위기의 징후가 보이자 기업들은 호들갑을 떨며 퇴직을 요구한다. 결혼 20∼30년만에 남성들이 가정으로 돌려보내진 것이다. 그러나 가족과 함께 한다는 것은 낯설기만 하다. 자녀의 마음에도, 아내의 부엌에도, 그리고 밝은 대낮의 안방에도 자신의 공간은 없다. 모든 것은 아내에게만 익숙한 공간인 것이다. 돌아올 공간이 없는 아버지는 더욱 쓸쓸하다.
이제 가족과 일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이 필요하다. 우선 남성에게도 회사와 가족을 똑같이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와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다. 「회사를 향한 의무」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화목한 가정을 위한 권리」를 주어야 한다. 다음으로 남편과 부인 사이에도 적극적인 역할 재조정이 필요하다. 「남자는 일, 여자는 가정」이라는 고식적인 분업의 틀을 넘어서야 한다. 가정으로 돌아온 남편이 낯설지 않고, 그들의 불가피한 휴식이 부담스럽지 않은 사회를 생각한다. 가정과 일에서 함께 하는 부부는 아름답다.<여성학>여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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