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대통령 부인의 회고록을 두고 말들이 많다. 회고록중 이른바 「6·29선언」의 주체가 자기쪽이라고 밝힌 내용이 보도되자 다른 전직대통령측이 발끈해 사실과 다른 일방적 주장이라고 맞받았다.대통령직선제 수용의사를 밝힌 6·29선언의 주체가 회고록을 쓴 쪽이라는 것은 몇해전 담당 비서관이 폭로한 바 있어 더 이상 흥미거리가 아니다. 궁금한 것이 있다면 그 이면사 정도이다. 살아서 연희동 옛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든가, 반드시 선거에 이겨야 가족이 안전하리라는 본능적인 생각이 들었다는 대목들은 국민적 저항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흥미로웠다. 이런 기대심리와는 아랑곳 없이 이 회고록은 자기측 미화와 합리화에 급급, 몇마디로 충분할 것을 장황하게 떠벌린 기교적인 문장으로 가득 찼다.
박종철 이한열 두 젊은이의 죽음을 계기로 폭발한 국민적 민주화요구에 대해 『정권교체를 요구하는 측도 양보하는 측도 균형을 지킬 줄 아는 양식과 이성이 필요하다』고 한 상황인식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되고 정말 글 쓴이의 균형감각을 의심케 된다. 시민들까지 거리로 쏟아져 나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양식없는 짓으로 몰아붙이고 6·29선언은 누가 뭐래도 5공통치의 꽃이라고 자화자찬한 용기가 무섭다.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벅차했다』 『이제 평화적 정부이양만 성취하면 국가위기속에 출발한 정부로서는 그 시대가 요구한 역사의 몫을 행복하게 감당해낸 공화국으로 평가될 것이었다』는 말도 그렇다. 당연한 의무를 구국의 용단이라도 되는 것처럼 썼다.
회고록은 진실해야 한다. 사건의 당사자들이 일반인으로서는 알 수 없었던 비밀을 사실대로 밝혀 역사발전에 기여하지 않으면 존재가치가 없다. 그래서 쇼펜하워는 『역사책보다 회고록 읽는 것이 유익하다』고까지 말했다. 국가와 민족의 이해와 명예가 얽힌 나랏일이 당사자 일가족의 이익을 위해 분식되어서는 곤란하다.<논설위원실에서>논설위원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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