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보호 정책 이젠 달라져야”/매장지 불도저로 몰래 밀어도 고작 벌금 200만원/특별법 등 제도정비·관리전문가 육성 할 일 태산『전통문화는 우리의 뿌리입니다. 그런데도 국민이나 위정자 모두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잊고 있는 듯합니다. 세계화시대에 우리 문화를 보존하고 알리는 것은 정체성을 확인하는 동시에 경제발전을 위한 간접투자입니다』 97문화유산의 해 조직위 한병삼(61) 집행위원장은 19일 인터뷰를 통해 내년 한해가 진정 문화창달의 원년이 되도록 국민과 함께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그의 이같은 다짐은 전날 문화유산의 해 조직위(위원장 고병익)가 발표한 사업 방향을 보다 선명하게 설명해준다.
우선 시급한 것은 문화유산의 보존·관리에 필요한 제도정비이다. 그래서 구미선진국과 일본에서 시행 중인 「역사고도 자연환경보전특별조치법」이나 「고도보존법」 등의 제정을 추진하고 문화재평가제를 도입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우리처럼 경제논리에 밀려 문화재가 훼손되는 나라도 드뭅니다. 최근 경부고속철도 구간에서 한 업자가 공기지연을 우려, 밤 중에 몰래 문화재매장지역을 불도저로 밀어버린 사건이 이를 잘 말해줍니다. 그래도 처벌은 고작 벌금 200만원입니다. 일본은 「역사고도 자연환경보전 특별조치법」이 의원입법으로 제정된 후 위법자를 엄하게 다스리고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하는 등 문화재사랑이 남다른 한집행위원장은 이같은 예를 들면서 3공 시절에는 문화재보호에 「반짝관심」이라도 보였지만 지금은 그 때보다도 더욱 못하다고 안타까워했다. 특히 내년은 대통령선거가 있는 해여서 개발우선의 선심공약이 난무할 것을 우려한 그는 눈앞의 이익에 매달려 문화유산을 훼손하는 과오를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집행위원장은 『문화재관리국에 전문가가 거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수시로 바뀌는 일반직 공무원이 정책을 세우고 추진하다보니 일관성있는 행정을 펴기가 어렵습니다』며 『대학의 고고학과, 인류학과 등 관련학과 전공자들을 학예연구직으로 채용하거나 박물관에서 근무하는 인력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전문가를 키워나가야 합니다』라고 전문가 양성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지방자치단체의 경우는 더욱 한심한 실정이다. 고속철도 건설 등이 본격화하면 지역별로 문화재발굴·보존을 담당할 많은 전문인력이 필요한데 현재의 자치단체인력으로는 속수무책이다. 그는 유적발굴을 대학에 일임하지 말고 자치단체에 반관반민의 기구를 두어 전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한집행위원장은 『국보급문화재들이 보도된 것처럼 붕괴 우려가 있거나 갑자기 훼손된 것같지는 않지만 지방문화재의 경우 인력부족으로 국가지정문화재에 비해 관리가 허술한 것이 사실』이라며 『각 지역의 유지로 구성된 지역문화재 명예관리인제도를 활성화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문화재에 대한 국민의 인식제고는 박물관활용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즉 전국 곳곳의 박물관이 능동적으로 국민이나 지역 주민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초·중·고교 등 각급 학교 교과서에서 문화재를 중요하게 다루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해외유출 문화재의 환수는 무리하게 추진해서는 안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오히려 세계 각국의 박물관에 독자적인 한국실설치를 유도, 숨어 있는 우리문화재를 밖으로 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최진환 기자>최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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