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던 알베르토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이 17일 발생한 일본 대사관저 인질사건으로 입지가 더욱 좁아지게 됐다.90년 선거에서 「사무라이 쿠데타」바람을 일으키며 당선된 이래 경제재건과 정치안정이라는 두가지 과제를 성공적으로 풀어가는 듯 하던 후지모리 대통령은 최근 국민은 물론 최대 지지기반이던 군부로부터도 비판에 직면해 왔다.
취임 당시만 하더라도 페루는 달러베이스로 연간 마이너스 4% 성장률에 40%의 살인적인 인플레에 시달리고 있었다. 여기에 센데로 루미로스(빛나는 길) 등 좌익 게릴라들로 인한 혼란이 극에 달했다.
후지모리 대통령은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 국영기업 민영화와 농업부문 보조금철폐 등 과감한 시장경제개혁을 실행, 저성장 고물가로 대표되는 「남미병」을 치유했다. 이에 따라 페루는 4년만에 성장률 12.9%, 인플레이션 11.4%라는 경제모범국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또 군부의 강력한 지지를 업고 마약범죄단 및 게릴라들과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치러내 사회안정도 이뤘다.
그러나 정치분야에서는 오히려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92년 부패추방을 이유로 법원과 의회를 해산하고 93년 자신의 재선을 보장하는 헌법개정을 감행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3선출마를 가능케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무리수를 뒀다. 비판적인 군부인사들을 숙청, 반발을 샀고 최근에는 경제상황까지 악화하면서 국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부인 수산나 히구치 여사와의 이혼으로 인한 이미지손상까지 겹쳐 올해초만 해도 75%에 달하던 그의 인기도는 41%까지 떨어졌다. 더구나 일본 대사관저 인질사건이라는 악재로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던 모국 일본과의 관계마저 껄끄럽게 되는 등 궁지에 몰리고 있다.<김준형 기자>김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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