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별연설을 하기 위해 17일 연단에 선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유엔사무총장의 표정은 착잡했다. 코피 아난 차기 유엔사무총장 지명자를 정식 선출하기 위해 소집된 이날 총회에서 그가 남긴 고별사 또한 표정만큼이나 무거운 것이었다.『유엔은 일개국가의 비위를 맞추는 존재가 돼서는 안된다』 코피 아난 후임사무총장을 포함, 회의장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일개 국가」가 어느 나라를 가리키는지 알고 있었다. 강하게 맞서다가 때로는 사정도 해봤지만 끝내 자신의 연임을 비토한 미국에 대한 서운함에 그의 연설은 시종 가시가 돋쳐 있었다. 『유엔의 심각한 재정난은 운영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나라들 때문』이라며 유엔분담금 14억달러가 밀려있는 미국을 성토했다.
그는 또 『내가 아침에 깨어나 맨먼저 생각하는 것은 유엔헌장의 정신과 이를 실천해야 하는 사무총장의 책임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유엔개혁에 소극적이라고 주장, 『미국은 자고 일어나면 개혁부터 생각하는 그런 사무총장을 원한다』고 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유엔주재 미국대사의 말을 빗댄 것이다. 소말리아 보스니아 르완다 등 유엔활동이 지속되고 있는 지역들을 열거하며 그는 역대 유엔사무총장 가운데 처음으로 연임에 실패, 벌여온 일들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떠나는 아쉬움과 유엔이 지닌 문제해결 능력의 한계로 인한 좌절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달 31일로 5년 임기를 마치는 부트로스 갈리 사무총장은 퇴임 후에는 모국 이집트로 돌아가 저술활동에 전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외교가에서는 역대 사무총장중 유일하게 불어를 영어보다 잘했던 그가 현재 추진되고 있는 불어권 49개국 연방을 이끌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떠돌고 있다. 부트로스 갈리 총장 역시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을 땐 언제라도 도울 준비가 돼 있다』며 세계외교무대에서 완전히 퇴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여운을 남겼다.<김준형 기자>김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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