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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와 경쟁력/채서일 고려대 경영대 교수(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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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와 경쟁력/채서일 고려대 경영대 교수(한국논단)

입력
1996.1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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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와 규칙 준수는 단순 생활습관 아닌 사회·경제 전반의 막강한 ‘인프라’질서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사물 또는 사회가 올바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지켜야할 차례나 규칙」으로 정의되어 있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일정한 차례나 규칙을 지키지 못하면 사물 또는 사회가 올바른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면 우리 사회를 한번 살펴보자. 아무리 후하게 평가해도 현재 우리 사회와 사회 구성원들이 올바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즉 우리 사회에서 지켜야 할 차례와 규칙이 어디에서부터인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흔히 우리의 질서의식 부재를 탓하며 『일본의 질서의식을 보고 배워야 한다』 『미국인들이 질서를 지키는 모습에 감탄했다』고들 한다. 거기서 좀더 발전되면 외국 사람들은 아주 훌륭한 인간성과 양심의 소유자가 되어 버린다. 필자 역시 몇년간의 외국 체류를 통해 그들의 우수한 질서의식을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외국사람들이 특별히 뛰어난 천성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 사람들의 좋은 습관은 공공규칙을 위반하면 반드시 대가를 치루었던 경험이 쌓이면서 비롯되었다. 법질서가 확립되지 않았던 시절에 그들이 소지하던 총이나 칼같은 개인 무기들이 법의 규제력을 대신했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는 철저한 신고정신이 무기를 대신하고 있다. 질서를 위반하는 현장에서는 자신의 일이 아니더라도 모든 목격자들이 그 사실을 기록하고 신고한다. 우리처럼 뒤에서 욕이나 퍼붓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질서 위반에 대해 철저한 사회적 대가를 치르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좋은 습관은 천성이 아니라 사회 생활을 통해 습득되고 강화된다. 그러나 우리의 생활은 질서위반이라는 나쁜 습관을 강화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행 교통법상 엄연히 택시합승은 위반이지만, 택시합승을 안해본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궁금하다. 우리 학교의 한 엘리베이터에는 교직원 전용이라는 작은 표지가 붙어 있지만, 몰라서인지 알고도 무시해서인지 많은 학생들이 애용하고 있다. 지킬 수 없는 규칙을 만들어 놓고 많은 사람들이 습관적 질서위반자로 살아가게 해서는 안된다.

이미 나쁜 습관에 익숙해진 사회구성원과 그것을 고치기는 커녕 부채질하고 있는 사회 구조가 맞물려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 우리의 질서 수준이다. 질서를 준수하는 사회의 힘은 단순히 택시 승차장 앞에서만 발휘되는 것이 아니고 사회 정치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 심각성을 놓고 모든 사람이 고민해야 한다. 질서의 준수는 무너진 백화점과 다리를 다시 건설하는데도, 나날이 하향곡선을 그리는 우리 경제지표들의 방향을 돌려 놓는데도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아는 한 경영인은 『단 하루라도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으면 사업을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아 벌어지는 경영의 나태함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업 현장에서는 지켜야 할 것을, 다시 말해 업무의 질서를 준수하지 않으면서도, 마음이 편한건지 머리가 모자란 건지 아무일 없기만을 바란다. 혹시 문제가 생기더라도 아래 위 옆사람 끌어다가 『네 탓이요』라고 하면 그만이다. 업무의 질서를 지키는 대신, 지킬 수 없었던 사정을 변명하는 습관만이 남았다. 이렇게 습관적인 변명을 늘어놓는 동안 세계시장에서 우리 제품의 경쟁력이 급속히 약화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통한 변명이 세계시장에서도 통할 리 없기 때문이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이 있듯이 작은 질서를 위반하게 되면 큰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는 대담함이 길러진다. 작은 질서까지도 소중히 지키는 습관은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한 인프라가 된다. 차례와 규칙이 지켜지면 사회는 올바른 상태가 되고 그 올바른 사회가 우리나라의 경쟁력 회복의 토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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