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은 주인공 트랩 대령 일가가 나치의 추적을 피해 중립국 스위스로 탈출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트랩 대령 일가의 고난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사운드 오브 뮤직」에 9년 앞선 56년에 같은 소재로 서독에서 만들어진 영화 「보리수」는 탈출 후 트랩 대령 일가가 맞닥뜨렸던 위기의 순간을 클라이맥스로 삼고 있다. 트랩 대령은 오스트리아에서 그들 가족의 합창공연을 보고 미국공연을 주선하겠다고 제의했던 미국인을 찾아 일가족이 망명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하지만 그 미국인의 반응은 차가웠다. 트랩 대령의 메아리없는 호소를 문밖에서 안타깝게 지켜보던 부인 마리아는 7명의 자녀들과 함께 보리수 합창을 한다. 그제서야 고개를 가로젓던 그 미국인은 트랩 대령 일가의 망명을 돕겠다고 나선다.
영화 보리수는 물론 그 미국인이 가족들의 화음에 「감동」한 것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실제의 그 미국인이 도움을 주기로 한 것은 트랩 대령 일가의 상품가치를 계산한 때문은 아닐까. 그 일가가 미국 망명후 트랩 싱어즈로서 순회공연했다는 사실이 그러한 의심을 떨쳐버릴 수 없게 한다.
망명이 목숨을 걸고 국경선을 넘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님은 베트남 공산화 후 보트 피플이 웅변한다. 공산화 이후 실정의 상징으로 초기에 각광받았을 때를 제외하고는 보트 피플의 운명은 참담했다. 그들중 적지않은 수가 받아주는 나라가 없어 열대바다를 떠돌다 파도의 제물이 되거나 해적들의 노략질 대상이 되었다. 천신만고 끝에 뭍에 오르더라도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경제난민이라는 국제사회의 차가운 판정 아래 난민수용소에서 불안정한 삶을 보내야했으며 상당수는 몸부림을 치며 버렸던 고국으로 추방되었다. 그들에게는 「보리수 합창」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동족인 탈북자들에게 「보리수합창」을 요구할 수 없다. 「3대탈출」이라는 극적요소로 연일 관심을 끄는 김경호씨 일가에 가려진 채, 중국과 러시아를 떠도는 「장삼이사」탈북자의 소식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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