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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변호사 좋은 시절은 갔나/‘부의 상징’ 대표적 전문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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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변호사 좋은 시절은 갔나/‘부의 상징’ 대표적 전문직

입력
1996.1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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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운영난·경쟁격화로 누구나 돈방석은 이제 옛말/작년 1,000여개 의원이 문닫고 일부변호사는 임대료도 버겁다/평균수입은 여전히 높지만 곳곳에서 동요의 움직임이…적자에 허덕이다 병원문을 닫는 의사, 직접 의뢰인을 찾아 나서는 변호사.

우리 사회의 대표적 전문직인 의사와 변호사들이 운영난과 경쟁격화 등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채 흔들리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전문화·집단화하거나 아예 「엘리트」라는 자부심과 어렵사리 얻은 천직을 포기하고 주유소나 식당 주인 등으로 전신하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

의사나 변호사가 되기만 하면 누구나 돈방석에 앉을 수 있다는 것은 옛말이 됐고 「빈익빈 부익부」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아직 사무직이나 다른 전문직종에 비해 평균수입은 앞서지만 상대적인 수입감소로 곳곳에서 동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한해동안 무려 1,000여개의 의원이 운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그래도 지난해까지는 신규개업이 폐업의원을 훨씬 앞질렀지만 올해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서울의사회에 따르면 서울지역의 경우 95년 신규개업이 382개소로 폐업 338개소보다 많았다. 반면 올해는 11월30일 현재 개업과 폐업이 318개소로 똑같다. 94년만 해도 폐업 370개소, 개업 451개소였다. 내년부터는 폐업수가 개업수를 앞지를 전망이다. 낮은 의료보험 수가와 큰 병원만을 선호하는 국민들의 의식이 의사의 위기를 부르고 있다는 것이 의료계의 설명이다.

서울 중구 충무로에서 25년간 비뇨기과의원을 열었던 전문의 허용박사. 매달 300만원에 이르는 적자를 감당하지 못해 지난해 병원문을 닫고 동대문구 용답동에 주유소를 열었다. 그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31세때 국립경찰병원 과장을 지낸 엘리트 의사였다. 『병원문을 닫고는 몇달동안 잠을 제대로 못잤어요. 먹고 살 걱정은 없었지만 자긍심을 갖고 평생 해 온 일을 포기하니 자괴감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주변 사람들이 의사가 망했다는 사실을 믿으려 들지 않았어요. 운영난이 아닌 다른 이유를 찾으려는 사람이 많더군요』

그는 의료체계의 왜곡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지금과 같은 의료체계에서는 규정대로 진료하면 반드시 적자를 보게 돼 있어요. 의료보험 수가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보일러 고치는 데도 10만원 이상이 드는데 초진에 30분 이상이 소요되는 비뇨기과 진료비는 3,000원에 불과해요. 1일 주사료가 1회용 주사기값을 포함해 540원이고 분만비는 시간에 관계없이 4만원인데 누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진료를 하겠어요. 그래서 우선 제왕절개수술이나 고가의 첨단의료기기 사용을 권하는 겁니다. 두 아들에게 의사직을 권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서울 구의동에서 22년째 정형외과를 해온 권혁채박사도 『의사직을 명예퇴직하고 싶다』고 말문을 열었다. 『외형상 연 매출이 2억원이지만 직원 9명 임금만 1억5천만원이고 장비리스비, 운영비 등을 제하면 남는게 거의 없어요. 요새는 그나마 임금 주기도 빠듯해 월급날인 25일이 다가오면 돈 빌리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89년부터 25병상짜리 입원실을 없앴어요. 주차비도 1시간에 4,000원하는데 하루 입원비 9,970원으로 견딜 수가 없잖아요』

대한의사회가 올 7월 개업의 96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20.1%가 전업 또는 전직을, 11.5%가 폐업, 8.4%가 장소 이전이나 위탁경영을 고려하고 있다고 응답해 전체의 40%가 사실상 병원 문 닫을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젊은 의사들은 대개 병원문을 닫으면 「페이 닥터(월급쟁이 의사)」 자리를 찾는다. 그런데 요즘은 폐업의사가 늘어나다보니 이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어서 기업체 의무실로 가는 경우도 늘고 있다.

병원의 운영난은 이제 소규모 병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서울 도심의 종합병원까지 적자에 못이겨 문을 닫는 형편이다. 의사들이 갈 곳 찾기가 힘들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 을지로3가 서울을지병원은 최근 긴급 이사회를 열어 폐업을 결정했다. 67년 문을 연 이 병원은 내년 1월말 문을 닫기 위해 근로자들에게 폐업통고를 했다. 올들어 300병상 가운데 100여개만이 찰 정도로 경영이 악화했다. 주차난에다 대학병원과 재벌병원 등 큰 병원을 우선 찾고 보는 국민의식 때문에 도심의 중소병원은 환자확보가 어려워진 것이다.

외곽지역 병원은 인근에 들어서는 대형병원에 짓눌려 더이상 기를 펴지 못한다. 한때 서울에서 가장 「잘나가는」 병원으로 알려졌던 서울 송파구 석촌동 남서울병원도 그때문에 문을 닫았다.

변호사들도 최근들어 불경기의 썰렁함과 치열한 경쟁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 변호사들 사이에는 요즈음 『어때요』 『큰일났어요』가 인사가 됐다.

수임건수가 서울의 경우 지난해 1인 평균 53.8건으로 손익분기점이라는 60건을 크게 밑돌았다. 올해는 더 악화했다. 11월30일 현재 한사람이 48건을 수임, 지난해보다 10% 가량 줄어 들었다. 또 서울지역 변호사 2,323명중 500여명이 사무실 임대료조차 부담하기 힘든 20건 수준이다.

93년에는 사법연수원 수료후 바로 개업한 S변호사가 운영난으로 3년만에 수억원의 빛을 져 임대료조차 못낼 지경에 이르자 잠적한 일도 있었다.

판사나 검사를 거치지 않은 젊은 변호사일수록 불안감은 더하다. 그래서 아예 단독개업을 포기하고 법률회사(로펌)에 취업하거나 여러 명이 모여 합동사무소를 여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 됐다. 올해 변호사를 지망한 사법연수원 수료생 50명중 단 한명도 단독개업자가 없다는 것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변호사들은 이제 단독개업이나 법률회사만을 고집하지도 않는다. 기업체로도 발길을 돌리고 있다. 7월에 한국통신이 정보통신분야 전문변호사 3명을 채용하기 위해 모집공고를 냈을 때 15명의 지원자가 원서를 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김성기 회장은 『의뢰인을 앉아서 기다리던 시대는 끝났다』며 『대형화·전문화하지 않으면 경쟁력을 키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기다리기보다 고객찾아 나선다/무한경쟁시대 살아남기… 문화행사 개최·언론홍보 등 적극 마케팅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한 건물에는 5색 네온사인 6개가 밤새 불을 밝히고 있다. 네온사인의 주인은 유흥업소가 아닌 이 건물에 집단 개업한 전문의들이다.

이처럼 요즘 서울 시내 곳곳에는 밤에도 전등을 화려하게 밝힌 병원 네온사인 간판이 눈길을 끌고 있다. 또 일산 분당 등 신도시에는 병원 개원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거리 여기저기에 내걸려 있다.

병원도 환자가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고객」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마케팅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일부 병원에서는 지역주민을 위한 문화행사를 개최하거나 의사나 친족이 아닌 전문경영인에게 병원경영을 맡기는 등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여성전문병원인 경기 안양 신영순병원은 음악회나 전시회를 여는 상설 공간을 병원내에 갖추고 태교음악회 등을 열고 있다. 충남 서천의 서해병원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이동 전시회, 국립국악원 초청공연, 국립합창단 초청공연 등 농촌주민들이 접하기 어려운 수준 높은 문화행사를 잇달아 열고 있다.

인천 성민병원은 지난해 의사가 아닌 병원행정직 출신의 전문경영인을 원장으로 영입했다. 이 병원은 새원장 영입 이후 노사분규가 해결되고 입원 및 외래환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병원의 창업과 경영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병원컨설팅회사도 하나 둘 등장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한국병원경영정보연구소(소장 김일출)는 올해에만 전북 군산과 강원 삼척, 전남 여천 등에서 새로 문을 연 중소규모 병원 3곳의 설립업무을 대행했다. 이 연구소는 설립대행업무와 함께 병원경영 상태 진단, 병원 근무자 연수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

재야 법조계에도 고객유치를 위한 묘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마케팅 전담부서 운용, 추가법률 서비스, 언론홍보 등을 펼치는 법률회사와 변호사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마케팅 전략을 가장 활발하게 펼치는 곳은 역시 법률회사들이다.

「김&장」 「한미합동」같은 법률회사는 마케팅 전담변호사를 두고 대기업 등을 대상으로 수임활동을 벌이고 있다. 또 단골고객에 대해서는 수임사건 이외에도 모든 분야에 걸친 법률자문 등의 추가서비스도 실시한다.

단독개업 변호사들은 접대나 언론홍보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발로 뛰며 사건을 수임하기 위해서는 학맥과 인맥을 최대한 활용하고 술이나 골프 등의 접대활동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젊은 변호사 가운데 방송출연 등 「외도」를 통해 얼굴을 알린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고객확보가 쉬워진다.

변호사의 마케팅 활동이 이처럼 활발해진 것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업무 전문화의 결과이기도 하다.<이진동·이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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