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들도 경탄하는 ‘음악당’ 음향/개인단체는 엄두못낼 고급 기획·공연/하지만 대중과의 괴리도 커/10돌 앞두고 ‘눈높이 맞추기’ 활발한데서울에는 「문화가 없다」고들 한다. 넘쳐나는 것은 오직 사람과 차량뿐이라는 짜증섞인 목소리만이 무성하다. 「놀 곳」은 많아도 「쉴 곳」은 없다는 비판도 드세다. 그래서 휴가와 방학철이 돌아오면 사람들은 저마다 문화와 쉴 곳을 찾아 배낭을 꾸리기 바쁘다. 파리와 런던, 시드니와 뉴욕이 가진 「문화도시」의 영예를 서울은 아직 나누어 가지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파리에 퐁피두센터가 있다면 서울에는 예술의전당이 있다』고 예술의전당 홍보부장 노재천씨는 말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만이 아니다. 세계적인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는 예술의전당 서울음악당 무대에 선 후 『나는 수많은 연주홀에서 연주해보았지만 이곳을 최고들 중 하나로 손꼽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는 객관적인 실험 결과로도 입증된 바 있다. 음악공연장의 수준을 가늠하는 주요 기준 중 하나인 잔향시간의 경우, 예술의전당은 2.0초(만석시)로 카네기홀의 1.7초에 비해 훨씬 뛰어나다. 그만큼 공도 들였다. 7만 2,000여평의 부지에 공사비만도 1,500억원 이상이 투입되었다.
예술의전당은 국내 최대이자 유일의 복합문화예술공간이기도 하다. 예술의전당에는 현재 오페라 하우스, 음악당, 미술관, 서예관, 자료관 등 5개 주요 시설이 입주해 있다. 특히 서예관은 세계 유일의 서예 전시·교육 전용 공간으로서, 88년 이후 10년째 계속돼온 한국 서예사 체계 정립을 위한 특별전은 예술의전당만이 할 수 있는 대역사로 평가받고 있다.
예술의전당에서 올린 각종 공연들의 양과 질 또한 비판은 있지만 대체로 세계 유수의 문화센터들에 비해 손색이 없다는 평을 받고 있다. 96년 한 해동안 각종 공연과 이벤트만 1,400여회(11월 22일까지)에, 관람객 수는 163만명에 달해 통산 1,000만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오페라 하우스의 「미국 발레 초청 시리즈」, 미술관의 「세계의 문자전」 등은 개별 단체에서는 기획하기 힘든 대형 프로그램으로, 서구 문화예술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제공 했다. 특히 「괴물 피카소전」은 12만명에 이르는 관객을 동원하여 문화예술의 공공성과 재미를 잘 조화시킨 사례로 평가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의전당은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가장 신랄한 비판은 대중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고급 예술중심의 공연 기획이나 비싼 관람료 등으로 일반 대중들이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상류 계층들만의 문화향유 공간이 아니냐는 것이다. 대중교통수단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위치와 지나치게 차갑고 무거운 건물 역시 문화의 대역사라는 당시 정권의 치적에는 어울릴 지 몰라도 문화 대중에게는 괴리감을 준다.
『명실상부한 문화예술의 메카라는 설립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일반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추는 프로그램과 서비스의 개발이 절실합니다. 이와 함께 전통적인 장르예술뿐만 아니라 여러 주변 장르들에도 폭넓게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공공성 제고를 꾀해야만 할 것입니다』라고 연극기획자 최선중씨는 말한다. 예술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에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측은 예산의 어려움을 든다. 많은 공연과 전시를 유치하고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 배정된 예산은 96년도 기준 195억원. 그나마 국고보조 및 공익자금 지원금 64억원을 제한 나머지 130여 억원은 자체 수익으로 충당해야 한다.
『예술의전당을 국립기관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법적으로 예술의전당은 엄연한 독립법인입니다. 일부 지원금을 제외한 대부분의 예산을 자체 확보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후원회원 모집, 전광판 설치 등을 통한 안정적인 재원확보 방안을 모색중이지만, 공공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적지 않습니다』 예술의전당 전체 살림을 맡고 있는 운영국장 곽정석씨의 말이다. 140여 명밖에 안되는 기획·운영 인력도 큰 어려움 중 하나라고 그는 덧붙였다.
예술의전당은 96년을 「고객만족 원년의 해」로 선포하고 서비스플라자 설치, 어린이 탁아시설 운영 등 고객 서비스 개선작업에 나섰다. 고질적인 문제로 지목돼왔던 부실공사, 안전성 문제도 내년 4월 완료를 목표로 대대적인 보수작업이 진행중이다. 예술의전당 회원 카드제 등 이미 시행되고 있는 우수 제도나 고객 프로그램 들의 홍보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이와 더불어 미술관에 영상실을 설치하는 등 대중문화 장르를 포섭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중이다. 거리축제 및 대중 교양강좌의 확충 등 지역문화 발전에 좀더 적극적으로 기여하기 위한 방안도 마련중이다.
내년으로 개관 10주년을 맞이하는 예술의전당은 개관 기념 심포지엄, 상징물 제막과 같은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준비중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기념행사가 아니라 명실공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예술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자성과 모색의 작업일 것이다.
정부의 정책적 배려, 대중들의 따스한 관심과 배려도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이 모두가 어우러질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서울에는 예술의전당이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대로와 산에 둘러싸인 ‘섬’ 예술의전당/‘지하문화가도’로 활로를 연다
예술의전당에 가는 방법은? 지하철 3호선 남부터미널역에 내려 걸어가거나 양재역쯤에서 택시를 타면 된다. 승용차가 있다면 곧바로 예술의전당 주차장까지 직행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걷기에는 좀 멀고, 택시나 승용차로 가려면 사당동 진행 방향의 경우 U턴이 되는 곳까지 가서 돌아 들어와야 한다.
요컨대 예술의전당은 뒷쪽으로는 우면산에 막히고, 앞쪽으로는 8차선 남부순환도로에 갇혀 마치 「섬」처럼 고립되어 있다. 좀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즐기라고 만들어 놓은 공간이 정작 일반 시민들의 생활환경과는 철저하게 차단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예술의전당측이 97년에 가칭 「지하문화가도 조성」을 중점 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한 것은 눈여겨 볼 만한 대목이다. 「지하 문화가도 조성 계획안」의 골자는 민자를 유치하여 남부 터미날 지하철역과 예술의전당을 지하도로 연결함으로써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제고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비단 지하공간뿐만 아니라 지상 또한 권역개발을 통해 문화 관련 시설을 유치, 예술의전당을 명실상부한 지역문화의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계획도 포함되어 있다.
이 사업계획안은 구체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진로그룹이 총예산 5,000억원을 투입하여 남부터미널역 일대를 주상복합공간으로 개발하기로 한 종합구상안에 지하 문화가도 조성안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상에 대한 관할 서초구청측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서초구청 도시계획과의 한 관계자는 『현재 정식으로 검토 요청이 없어서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예술의전당 일대를 서울의 문화적 중심으로 조성해나간다는 데는 서울시측과도 큰 합의가 도출되어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청사진대로라면 대략 2000년쯤에는 더 이상 예술의전당에 가기 위해 길을 에돌아가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단지 발품을 더는 식의 편의상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의전당을 우리 생활환경 속으로 되돌려 놓음으로써 「살아있는」 문화예술공간으로 거듭나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황동일 기자>황동일>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