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버스가 다니기 시작하고 동네 어귀에 편의점이 생긴 이후로 구멍가게가 사라지고 있다. 구멍가게란 동네 골목길을 오가는 보행자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곳인데 이들을 마을버스가 빼앗아가 버렸으니 고객이 없어져 버린 셈이다. 게다가 편의점까지 등장한 이후로 구멍가게는 경쟁력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다.물론 서울 등 우리나라의 도시들은 대부분 여름철 더위와 겨울철 추위가 매우 심하고 언덕길이 많기 때문에 마을버스가 여간 편리하지 않다. 또한 구멍가게에서 오래되어 변질된 물건이라도 한번 사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위생적인 편의점을 선호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구멍가게는 단순히 곰팡내 나는 과자가게만은 아니다. 구멍가게는 복잡한 동네 골목길에서 길 안내를 해주는 물리적 이정표일 뿐 아니라 동시에 공동체의 이정표이기도 했다. 구멍가게는 골목길 속 일을 잘 아는 다정한 골목대장 같은 곳이었으며, 급하면 외상도 주고 이 집에 필요한 물건을 저 집에서 구해다 주는 공동체의 조정자 역할을 하던 곳이었다.
편의점이 등장한 이후 생겨난 또다른 문제는 아이들의 군것질문화이다. 하교길에 중고등학생들은 떼지어 어김없이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파티를 벌인다. 그러나 컵라면 같은 인스턴트 식품에는 화학물질이 첨가되어 있어서 성장기 청소년들에게 이로울 리 만무하다. 우리의 청소년들이 인내심이 부족하고 성질이 급해진 원인을 인스턴트 식품문화에서 찾는 전문적인 의견들도 제시되곤 한다. 이제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 주시는 간식같은 것은 TV드라마에나 나오는 가상현실처럼 되어가고 있다.
온동네 소식의 집합체였던 구멍가게가 사라지는 현상은 우리 사회가 골목 속 이웃 소식에 무관심해진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확실히 우리 사회는 실용성이 주도하는 20대의 논리에 이끌려 가고 있고 구멍가게는 풍물사에나 나올 추억 속의 장면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구멍가게를 없애면서 우리가 얻은 것과 잃은 것이 무엇인지를 곰곰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20대의 논리가 절실하게 요구될수록 그 곁에는 항상 중년의 논리가 함께 있어야 그 사회는 건전함을 유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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