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유엔사무총장이 진통 끝에 가나출신 외교관 코피 아난 사무차장으로 어렵게 결정됐다. 그는 미국에 밀려난 갈리 총장의 뒤를 이어 2002년까지 5년동안 유엔의 수장으로서 21세기 세계평화시대를 열어나가게 된다.총장 인선은 결국 미국의 소원대로 된 셈이지만 그 뒷맛은 개운치 않다. 유엔안보리는 미국이 미는 아난 차장과 프랑스가 지원하는 아마라 에시 코트 디부아르 외무장관을 놓고 6차례나 투표를 실시했지만 미국과 프랑스가 서로 상대방 지원 후보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바람에 번번이 유산됐다.
영국을 비롯한 다른 상임이사국의 막후 중재로 프랑스가 여론에 굴복함으로써 유엔의 존폐문제까지 번질 뻔한 큰 말썽은 피할 수 있게 됐다. 프랑스로서도 할 말은 있다. 냉전종식후 국제질서의 개편과정에서 유엔평화유지군(PKF) 창설 등 유엔 본연의 역할과 위상강화를 위해 성실하게 일해 온 갈리 총장을 미국이 우격다짐으로 그만두게 한 것은 지나친 처사라는 것이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과 유엔 재정의 4분의 1을 부담하는 경제적 지분을 배경으로 유엔을 마치 미국의 국제적 이익을 대변하는 종속물처럼 다루는 것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것이 프랑스의 명분이다. 그것은 그것대로 말이 안되는 것은 아니다.
소련이 해체된 후 사실 미국의 상대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랑스가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에서,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자임하고 있는 견제 역할은 그래서 일면 약소국들의 성원을 받고 있다.
그러나 갈리 총장이나 에시 외무장관을 프랑스가 끝까지 고집한 진짜 이유는 프랑스의 배타적 민족주의와 문화적 우월의식이다. 프랑스 자신도 굳이 이를 감추려 하지 않았다. 유엔 공용어로서 주요 외교용어인 불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줄 알아야 총장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말이야 그럴 듯하지만, 이것으로 미국의 독주를 견제한다는 프랑스의 명분은 역사를 거꾸로 가는 유치한 언어분쟁차원으로 타락하고 말았다.<논설위원실에서>논설위원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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